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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은 하나의 소슬한 종교, 라고 말했던 사람은 미당 서정주였던가. 일제(日帝)가 비틀고 배고픈 시절의 정권이 급조한, 이 나라의 큰 문은 최근 대공사를 거쳐 거듭났다. 사진은 광화문 '수술' 직전 어느 꽃샘눈 내린 아침, 택시 창 속에서 찍은 것이다. 못나고 어설픈 것도 삶에 들어와 앉으면 그게 추억의 본체가 되어버리는 걸 우린 얼마나 많이 경험했던가. 그른 것을 바로잡는 일이 백번 옳은 일이고 당연한 것이라 하더라도, 익숙했던 것과의 결별은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곧 털려나갈 풍경을 당시 내린 눈과 더불어 눈에 넣어두었다. 지금 이 옛 문을 떠올리는 이가 있을까.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근대화를 지나오면서 때 묻고 눈물 묻었던 솟을대문. 이문세가 부르던 연가에 담긴 광화문은 이것 이었을 텐데...
이상국 기자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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