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오는 26일 일본의 신임 총리가 되는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엔화 약세 방침을 거듭 밝힘에 따라 외환전문가들 사이에서 환율 전쟁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TV방송에 출연한 아베 총재는 미국과 유럽이 환율을 평가절하 하고 있다며 일본은행이 이에 대항해 일본 엔화를 달러단 90엔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달러당 90엔 정도면 일본 기업들이 이윤을 볼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아베 총재는 "중앙은행들이 경제를 부양하고 수출을 늘리기 위해 돈을 찍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완화를 거론하며 "미국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들의 돈 찍어내기가 계속되면, 엔화는 계속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며 "이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재의 이와 같은 언급은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통화정책 완화에 나섬에 따라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것 외에도 한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가 환율이 강세로 돌아서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행위 등을 겨냥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가 전했다.
아베 총리는 환율 시장 개입보다는 일본은행이 엔화 공급량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만성적인 디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다, 엔화 강세 흐름마저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아베 총리는 1월 통화정책 회의에서는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로 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시티뱅크의 타카시마 오사무 외환거래 전략가는 "통화정책 완화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엔화의 약세가 동반될 때는 근린궁핍화 정책( beggar-thy-neighbor policy)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은행의 머빈 킹 총재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나라들이 내년에 환율 인하 정책에 나서려고 할 것"이라면서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새로 들어서는 아베 정부가 무조건식의 엔화 약세 보다는 그동안의 강세 흐름을 바로잡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엔화 약세가 반드시 일본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분석이 그 근거다. 일본경제가 대지진 이후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들 대신 해외에서 조달하는 화석 연료에 의지하게 되면서, 엔화 약세는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간사장은 21일 방송에 출연해 "일본의 산업구조를 감안하면 엔화 약세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면서 "엔화 환율을 달러당 85~90엔대에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무조건식의 엔화 약세를 허용하기 보다는 일본 기업들이 경쟁력을 회복하는 수준에서 환율을 절충하려 한다는 것이다.
크레디 아그리꼴의 사이토 유지 외환거래장은 "새로 들어서는 아베 정부는 엔화 약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엔화 강세를 바로 잡겠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달러당 85~90엔대의 환율은 일본의 수출업자 및 수업업자, 한국과 미국 등 주요교역국들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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