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 역사상 단기간에 가장 빠른 성장을 이뤄 온 나라로 기록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만 남았던 곳에서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하고, G20 회의를 개최할 만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나라로 발전했다. 누가 뭐라 해도 이는 지난 50여년간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제조업을 성장시킨 결과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은 최초의 출연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이를 모태로 하여 만들어진 여러 출연연구소와 민간기업에서 해외기술을 빠른 시간 안에 모방하고 학습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현재 우리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일부 분야에서 세계 1위의 제품을 생산하는 국가로 도약했다. 그러나 1등은 올라서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던가? 앞만 보고 쫓아가던 지난날에 비해 뒤쫓아 오는 다른 나라들을 견제하면서 미래를 미리 준비하는 일이 더 어려울 것이다.
1998년에 우리에게 큰 시련을 안겼던 외환위기는 우리나라의 미래에 큰 문제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비록 경제적으로 많이 회복돼 세계적 경제위기에서도 건재했다는 평가이지만, 당시 민간기업들을 필두로 연구소를 없애고 연구원들을 대량 해고했던 후유증은 앞으로 우리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과학기술자에 대한 선망의 시선이 사라져 최근 고등학교에서의 이과지망 학생들의 비율은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해 완전한 역전을 이루고 있다. 그나마 실력 있는 이과생들은 의대로 몰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50여년간 우리나라의 산업경제 발전의 보이지 않는 밑거름이었던 우수한 과학기술인력이 최근 10여년간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다.
이제 바야흐로 PC 시대를 거쳐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불리는 통신기기의 혁명으로 한정된 집단에게만 전달되던 정보는 전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게 됐으며, 이집트와 리비아, 시리아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와 국가의 운명까지 뒤바꾸고 있다. 앞으로는 정보의 독점과 통제를 통한 권력의 유지가 어렵게 될 것이다. 또한 석유에너지, 희소금속의 전략무기화와 신흥성장국의 위협 등 우리를 둘러싼 국내외의 환경은 험난하기만 하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과학기술계는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하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다행히 최근의 국가 연구개발(R&D) 투자(정부+민간)는 2011년 49조8904억원으로 세계 6위,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비율은 세계 2위 수준으로 성장했다.
정부의 R&D 예산은 2012년 16조원으로 전년 대비 7.6% 증가됐다. 또한 SCI 논문은 세계 11위, 국제특허의 등록은 5위로 양적으로 성장했으며, 과거 과학기술부에 한정됐던 R&D 사업은 31개의 부처와 청에서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간 양적으로는 많은 성장을 보여 왔으나 실제 투자에 비해서 질적으로는 성과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논문과 특허의 양적 증가는 그동안 연구자들의 평가 잣대가 SCI 논문의 숫자와 특허의 숫자였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적인 성장만으로는 글로벌 리더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과학기술을 확보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는 민간, 특히 연구계의 시각을 투영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인재양성, 기초과학 투자, 모험적 연구에 대한 지원, 개방형 연구행정 및 R&D 예산배분의 효율화를 통해 국가 R&D 투자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줄어든 우리나라의 성장 모멘텀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
홍재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심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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