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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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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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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것은 풀뿌리 기업문화의 기반이다. 고혈을 짜내 만든 기술이 대기업에 속절없이 유출된다면 중소기업은 고사하고 기업활동의 기반은 붕괴된다. 동반성장은 그래서 절실하다.


이런 기류를 타고 지난 2010년 건설산업에도 중소 하도급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도입됐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에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을 탈취ㆍ유용하는 행위에 한정해 발생한 손해의 3배까지 보상토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만든 것이다. 이 제도는 더욱 강화될 태세다. 19대 국회에 들어 징벌적 손해배상의 사유를 원사업자의 단가 인하, 서면계약서 미교부, 인력 탈취 등으로 확대하는 개정안이 제출됐다. 손해배상액 상한을 10배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이런 흐름은 우리에게 타당한 것인가?

미국에서도 우리와 같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논쟁 중이어서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미국에서는 적법절차의 원칙과 이중처벌 금지, 과잉처벌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반론이 커지고 있다. 급기야 루이지애나주, 네브래스카주, 워싱턴주, 매사추세츠주는 이미 일반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폐지하였다. 다른 주에서도 극단적이고 일탈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행위, 행위자의 주관적 상태에 대한 비난성이 큰 경우에만 인정되고 있다. 미 연방 법무부의 통계에 의하면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약 2% 정도만이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됐다.


다만 미국에서 독점금지법 위반행위(담합행위 등)에 대한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민사적인 제재가 주된 집행 수단으로 활용되고, 형사 제재가 부가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독점금지법에서는 양 제재 수단 간 적절한 기능 배분을 통해 규제의 목적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에서는 미국의 독점금지법에 해당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정거래법의 특별법이라 할 수 있는 하도급법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했다. 또 그 사유와 배상 크기를 확대하려는 입법이 시도되고 있다.


우리 하도급법은 공정거래법상 '자기의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 중 하도급 거래에 관련된 사항을 별도로 규제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의 특별법으로 1985년부터 운용되고 있다. 원사업자의 부당단가 인하, 서면계약서 미교부와 관련, 하도급법상의 제재와 관련해서는 현재 시정 조치ㆍ과징금 이외에 형벌 규정이 있다. 이 정도만 해도 다른 나라의 유사 법률과 비교해 과도한 측면이 있다.


미국 연방정부나 주정부 모두 건설 하도급에 관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하도급대금 지급 기한에 대해서 법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를 어길 경우 지연 이자를 지급하게 하는 규정이 있을 뿐이다. 더욱이 건설 하도급과 관련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서면계약서 미교부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외국의 사례와 비교해볼 때 매우 과도한 제재라 할 수 있다. 일부 독과점 산업의 경우 원도급자의 우월적 지위가 존재하여 부당하게 단가를 인하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건설산업에는 수많은 원도급자가 존재하고 하도급자는 어느 원도급자가 단가를 인하하더라도 다른 원도급자와 거래를 할 수 있다. 단가 인하를 반드시 수락해야만 하는 상황은 아닌 셈이다.


따라서 부당단가 인하, 서면계약서 미교부 등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한 건설산업 적용은 배제해야 할 것이다.


이의섭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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