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이창환 기자]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5년 동안 삼성전자를 이끌어 온 원동력에는 오너로서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결단력 그리고 전문경영인이 있었다.
통상 오너 경영을 하는 회사의 경우 극단적인 위기가 닥쳤을때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전문경영인이 오너의 경영철학을 이해하지 못해 독단적으로 행동하거나 오너가 전문경영인을 신뢰하지 못해 잘못된 길을 걷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삼성그룹은 달랐다. 윤종용, 이윤우, 최지성으로 이어지는 전문경영인들은 "1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이건희 회장의 '천재론'을 몸소 입증해왔다.
윤종용 삼성전자 전 부회장은 삼성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지난 1980년 중반 윤 전 부회장은 VCR 사업부를 맡았지만 실적 부진으로 잠시 필립스와 현대전자로 회사를 옮기기도 했다.
윤 전 부회장의 진가를 알아본 것은 이 회장이었다. 1987년 그룹 회장 취임과 동시에 그를 복귀 시켰다. 그는 이후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전관(현 삼성SDI) 등 전자 계열사를 총괄하며 이 회장을 옆에서 보좌했다.
한때 삼성전자는 DVD 사업이 시작되자 고민에 빠졌다. DVD를 보급하고는 싶은데 콘텐츠 대부분이 VCR 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윤 전 부회장은 고민하는 기술자들에게 "DVD 플레이어에 VCR 기능까지 집어 넣으면 된다"고 지시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북미 DVD 플레이어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크게 높이게 된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하게 처리하는 모습은 이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서의 난제를 해결하던 모습과 흡사하다.
이윤우 전 부회장은 이 회장이 인정한 진정한 천재로 평가 받는다. 컬러TV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던 시절 64K D램 개발을 맡아 이를 성공시켰다. 그는 진대제, 황창규 등 삼성전자 반도체를 꽃피운 전문가들을 영입하며 삼성전자의 근간을 다졌다.
미래전략실장을 맡고 있는 최지성 부회장은 '글로벌 1위' 달성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다. 지난 1985년 삼성반도체 구주법인장을 맡은 최 부회장은 본인의 자동차에 직접 반도체를 싣고 다니며 유럽 각지의 거래처를 직접 만났던 일화가 유명하다.
최 부회장의 능력을 한눈에 알아본 이 회장은 1993년 한국으로 그를 불러 들여 비서실 전략 1팀장 자리를 맡겼다. 이후 디스플레이, 디지털미디어 총괄 겸 디자인경영센터장 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 회장이 미래 경쟁력은 디자인 혁명에서 나온다며 디자인 경영에 나섰을때 이를 TV에 접목하고자 자신이 좋아하던 와인을 형상화해 '보르도' 시리즈 TV를 만든 일화는 TV 업계에서 전설로 남아있다.
명진규 기자 aeon@
이창환 기자 gold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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