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김영식 기자]그리스 의회가 진통 끝에 2013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추가 구제금융 지원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또다시 벼랑 끝에서 회생하긴 했지만 6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중인 그리스가 갈 길은 여전히 멀고 험난하다.
12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그리스 의회는 11일(현지시간) 내년도 예산안을 찬성 167, 반대 127표로 통과시켰다. 이번 예산안 통과는 135억유로(18조9000억원) 규모의 긴축안과 함께 트로이카(국제통화기금,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로부터 구제금융 미지급금 지원을 받는 전제 조건이었다. 예산안은 그리스의 내년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에 비해 4.5% 줄어들고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4%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야니스 스투르나라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예산안 통과로 315억유로 규모의 추가 구제금융을 제때 받을 수 있게 됐다”면서 12일 유로그룹(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회의체)에서 구체적인 정치적 방안이 나올 것을 낙관했다. 이번주에만 50억 유로 상당의 채무를 상환해야 하기에 그리스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는 구제금융 지원과 관련된 일련의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로 곧 향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그리스에서 예산안이 통과됨에 따라 12일 유로그룹 회의에서 그리스 지원 문제를 논의한다. 그러나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면밀히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그리스 구제금융 차기분 집행 결정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아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스 연립정부도 날로 고조되는 긴축 반발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지난달 ‘라가르드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스위스 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는 부유한 그리스인들이 20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리스 정부는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뒤늦게 탈세에 대한 전쟁에 착수했다. 지난 3년간 해외에 송금한 1만5000여명을 골라내 송금 규모와 재무상태에 대한 일제점검에 나섰다.
EU 각국이 그리스 국가부채의 탕감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0일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그리스 부채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쌓여 있으며 유럽의 구제금융 지원과 긴축 이행 요구는 그리스를 더욱 병들게 할 뿐”이라면서 채무국들이 자발적으로 그리스에 대한 부채를 감면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미 EU 각국은 지난해부터 끈질기게 이어진 협상 끝에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은행 등 민간부문 채권단에 50% 이상의 헤어컷(원금삭감)을 관철시켰다. 이에 따라 민간부문은 70% 이상의 손실을 감수하게 됐지만, ECB와 각국 중앙은행들의 ‘공공부문’은 어떠한 손실도 감수하지 않았다.
그리스의 국가부채는 2014년이면 국내총생산(GDP)의 19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단 6개월 전 IMF가 예상한 것보다 30%포인트나 높은 것이다. 부채부담의 경감이 없다면 결코 지속가능한 수준을 회복할 수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 경제는 계속 시간이 흐를수록 회생 불능의 늪에 빠지고 있고, 그나마 건질 수 있는 부채의 상환 가능성도 함께 침몰하고 있다”면서 “각국 납세자들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하는 등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유럽이 나서서 부담을 나누지 않으면 그리스의 침몰을 멈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
김영식 기자 gr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