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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이호-에스티벤, 철퇴축구의 방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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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이호-에스티벤, 철퇴축구의 방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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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사람들은 화려함에 쉽게 매료된다. 가령 록 밴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 보컬과 기타리스트다. 음(音)의 기본을 받치는 베이시스트나 드러머는 적잖게 간과된다.

지난달 31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른 울산 현대도 다르지 않다. '철퇴축구'에서 가장 눈길을 모은 건 김신욱, 이근호 등 공격수들이었다. 이들의 활약은 바로 뒤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하는 두 선수가 있기에 가능했다. 더블 볼란테 이호와 에스티벤이다. 중원에서 수비의 1차 저지선 역할을 담당하는 둘은 과감한 태클과 왕성한 활동량으로 중원을 쓸어 담았다. 적절한 커버 플레이로 팀 전체 움직임에 역동성까지 부여했다.


이호-에스티벤 듀오의 유무는 '철퇴축구'의 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하나라도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로 빠졌을 때 선수단은 맥없이 무너진 적이 많았다. 반면 이들이 맹활약한 지난해 K리그 6강 챔피언십과 올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선 모두 결승 진출이란 값진 성과를 올렸다. 밴드로 치면 최고의 베이시스트와 드러머였던 셈이다.

아쉽게도 둘은 올 시즌을 끝으로 이별한다. 이호는 상무 입대를 앞뒀고 에스티벤도 올해를 끝으로 3년 계약이 만료된다. 그래서 둘을 함께 앉혀놓고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답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철퇴축구의 진정한 근간이었다.


2011년에 처음 울산에서 만났다. 이전까진 서로에 대해 알지 못했을 텐데, 첫인상이 어땠나?


이호(이하 호):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에스티벤 머리를 만지며)그냥 대머리 독수리죠 뭐. (폭소)


에스티벤(이하 벤): (한국어로)아 정말…. (일동 폭소) 이호가 어린 시절 브라질 유학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그래서 첫 만남 때 친절하게 다가가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그런데 웬걸. 건들건들 거리며 "조금"이라고 성의없이 대답하더라. 첫인상이 좀 별로였다. (웃음)


호: 아, 그게 왜 그랬냐 하면…. 내가 포르투갈어 할 줄 안다고 하면 좀 잡일이 많이 생긴다. 통역이 없을 땐 내가 일일이 챙겨야 하지 않나? 그래서 못한다고 둘러댔던 거다. 그래야 생활하기 편할 것 같아서.


벤: 처음엔 그래서 좀 냉정해 보였는데, 지내다 보니 정말 좋은 친구다. 경기장에선 종종 시끄럽거나 거리가 멀 때 통역이 전달해주는 작전지시를 못 들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이호가 와서 얘기해준다. 늘 도움도 많이 받아 고맙게 생각한다.


[피플+]이호-에스티벤, 철퇴축구의 방파제


그라운드에서 둘의 조합은 그야말로 철퇴축구의 방파제다. 특히 중원에서 상대 패스 줄기를 자르는 능력은 K리그 최고 수준인데.


호: 처음엔 스타일이 서로 달라서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특히 에스티벤은 원래 포지션이 미드필더도 아니었다. 지금은 너무 좋다. 기본적으로 많이 뛰는 선수고, 개인 기술도 있다. 자신이 팀을 위해 뭘 해야 할지 잘 아는 선수다. 개인적으로도 좋은 친구 사이에서 평소에 서로 대화를 많이 한다.


벤: 상대 패스를 끊어내는 건 자신 있다. 비결은 경험과 나만의 직감이랄까. 공격전개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었던데 사실이고 인정한다. 그런 점에 다소 기복이 있긴 하다. 이호와의 호흡은 좋다. 함께 2년 정도 뛰었는데, 그라운드에서 소통도 잘되고 서로 배려한다. 특히 둘 다 뭔가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보니 잘 맞는 것 같다.


호: 경기 전후는 물론이고 경기 중에도 끊임없이 대화하며 둘이 팀의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서로 잘못된 점도 지적해주고 맞춰준다. 외국인선수지만 서로 말이 통하다 보니 가능한 일이다. 특히 외국인선수 입장에서 내가 이렇게 하는 건 좀 아니꼬울 수도 있을 텐데, 에스티벤은 그런 게 전혀 없이 잘 받아들여 준다.

[피플+]이호-에스티벤, 철퇴축구의 방파제


역시 축구에서도 소통이 중요한가 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철퇴 축구'의 진짜 힘은 이호-에스티벤의 중원에서 시작되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 K리그 6강 챔피언십 때도 그랬고, 이번 ACL에서도 둘이 나올 때와 그렇지 못할 때 울산의 경기력은 판이했다. 정작 본인들의 생각은 어떤지.

호: 우리 팀 공격진엔 '차이'를 만들어낼 줄 아는 선수들이 많다. 나와 에스티벤이 할 일은 그 친구들이 앞에서 편하게 공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 우리 둘 외에도 (곽)태휘형을 중심으로 수비수들이 잘 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그런 얘기 들으면 알아주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고맙다. (웃음)


벤: 이호랑 같은 생각이다. 또 우리 팀 조직력이 좋은 것도 긍정적 효과를 낸다.


호: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은 오직 '철퇴 축구'였다. 전술이나 스쿼드 면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덕분에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가 높아졌다. 그런 가운데 서로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가 됐고, 우리 둘도 그라운드에서 뭘 해야 할지 확실히 알고 있다. 그래서 주변에도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울산 유니폼은 어떤 의미였나. 이호는 3년 반만의 친정팀 복귀였고, 에스티벤에겐 첫 해외무대 진출이었다.

호: 다시 돌아왔다곤 하지만 모든 게 새로웠다. 예전 내가 뛰던 시절 있던 선수는 (김)영삼이형 하나뿐이다. 구단 스태프나 직원은 물론 심지어 청소하시는 분들까지도 다 바뀌었더라. 아무래도 한동안 외국생활을 하다 보니 그쪽 문화에 젖어있던 부분도 있었고…. 그래서 친정팀이긴 했지만 또 달랐다. 그래도 한국 선수들과 지내고, 외국인 선수들도 하나같이 모난 친구가 없어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지금까지 온 것 같다.


벤: 사실 콜롬비아 시절 내 포지션은 측면 수비수였다. 처음 울산에 와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게 됐을 때 정말 힘들었다. 특히 K리그는 경기 진행 템포가 굉장히 빨라서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젠 익숙해졌다. 더 이상 포지션 변경 없이 수비형 미드필더로만 뛰고 싶다.


아내 얘기, 여자친구 얘기 안 할 수 없다. 이호는 가수였던 양은지씨와 결혼했고, 에스티벤의 여자친구도 한국에서 생활하는 걸로 안다. 요즘 잘하는 건 모두 내조의 힘인가.


호: 내조란 게 뭐 산에 가서 뱀 잡아오고 그런 게 아니지 않나. (웃음) 안 굶기고 잘 재워주면 된다. 집에 가면 맛있는 음식 해주고, 마음 편하게 해주고, 다음날 운동 잘 나갈 수 있게 도와주고…. 훈련이나 경기를 마친 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마음에 안정이 생기고 편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플레이도 총각시절보다 더 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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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여자친구와 나는 서로 얘기가 잘 통하는 사이다. 또 내가 어디를 가도 늘 함께 다닌다. 음식을 차려주고 옷도 일일이 다 세탁해줄 정도다. 아, 한 번은 세탁기에 축구화를 잘못 넣어서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웃음)


호: 실제로 에스티벤 여자친구를 만난 적은 없는데, 에스티벤은 항상 전화기를 붙들고 산다. 물론 여자친구랑 통화하는 건지 다른 여자랑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벤: (버럭하며) 여자친구 맞거든. 맞다. (한국말로)아유 씨…. 너도 맨날 전화하던데 누구랑 하는 거야.


잘못했다간 가정-연인 불화 일어나겠다. 질문을 바꾸자. 에스티벤은 한국 생활이 벌써 3년째인데 생활에 불편함은 없나.


벤: 한국어가 정말 어렵다. 3년 동안 공부했는데 팬들에게 간단한 인사나 감사 표시 정도만 할 수 있는 정도다. 언어 자체가 굉장히 배우기 어렵다. 한국 음식도 전체적으로 입에 잘 안맞는다. 매운 음식이 특히 어렵다.


호: (기자에게) 아, 얘 한국어 욕 정말 잘한다.


벤: 할 순 있는데 여기서 보여주긴 좀 그렇다.


이제 대망의 ACL 결승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목표는 무조건 우승일 텐데. 더군다나 우승하면 클럽월드컵에도 나갈 수 있다.


호: 준결승 2차전 앞두고 선수들끼리 얘기한 게 있다. 우리가 선수 생활하면서 이런 기회가 몇 번이냐 찾아오겠느냐고. 평생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기회다. 결승전은 단판 승부고, 또 우리 홈에서 열린다.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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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솔직히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 감회가 남다르다. 그동안 중동 장거리 원정까지 다니면서 힘들게 올라왔는데, 그동안 노력이 헛되지 않게 꼭 우승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다. 난 지는걸 굉장히 싫어하는 성격이다. 클럽월드컵에 나가게 된다면 그곳에서도 결승에 오르고 싶다.


호: 분위기는 최고다. 선수단 전체에 조급함이나 압박감보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지난해 6강 챔피언십 때와 비슷하다. 밖에선 이런저런 얘기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우린 흔들리지 않고 하나가 됐었다. 그래서 지난해 비록 준우승이지만 좋은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이번엔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싶다.


이호는 제니트 시절 UEFA(유럽축구연맹)컵과 슈퍼컵에서도 우승해봤으니 또 자신이 있겠다.


호: 느낌은 조금 다르다. 특히 아쉬움이 남는 게, 그래도 아시아 무대 준결승인데 관중이 많이 않았다. 제니트에 있을 땐 홈팬들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경기장을 찾아 잔치 분위기에서 경기를 즐겼었다. 결승전에선 많은 분들이 응원 와 주셨으면 좋겠다.


이호에게 궁금한 것 또 한가지는 역시 대표팀이다. 벌써 4년 넘게 태극마크와 인연이 없다.

호: 얼마 전 (김)진규가 인터뷰한 걸 봤는데 대표팀은 축구를 그만둘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더라. 나도 같은 생각이다. 예전 대표팀 시절엔 뭣도 모르고 그냥 뛰었는데, 지금은 경기를 준비하는 태도에서 변화가 생겼다. 아직 부족한 것 투성이라 부끄럽지만, 언젠간 다시 대표팀에서 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올해를 끝으로 이호-에스티벤 듀오는 잠정 해체된다. 이호는 군대에 가야하고, 에스티벤도 계약이 만료된다. 앞으로 다시 만날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울산에서의 경험은 소중할 것 같다. 둘에게 울산이란 팀은 어떤 의미인가.


호: 나는 울산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울산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요즘엔 한 팀에서 오래 뛰는 선수가 거의 없지 않나. 계약기간도 짧고, 이적도 잦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땐 김현석 코치님처럼 '원클럽맨'이 많았다. 그분들만큼은 못되겠지만, 나도 울산팬들에게 오랜 시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벤: 어디를 가도 축구는 똑같다. 다만 울산은 뭔가 특별하다. 선수들이 전부 착하고, 하나의 목표를 갖고 함께 달려가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 올 시즌이 끝나고 재계약을 맺게 될지, 다른 팀으로 떠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 팀에 정말 만족한다. 지난해 리그 준우승이 너무 아쉬웠기에, 이번엔 꼭 ACL 우승을 하고 싶다.




전성호 기자 spree8@
사진=정재훈 기자 roze@, 울산 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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