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3위 이동통신업체 소프트뱅크의 미국 스프린트 넥스텔 인수 발표는 역대 일본 기업들의 해외자산 인수합병(M&A) 중 역대 최대 규모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일본 인구가 갈수록 줄고 경제가 제자리걸음을 하며 ‘엔고(高)’에 따른 어려움도 커지자 일본 기업들은 예전부터 해외로 나갈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왔다.
18일(현지시간) 경제 주간지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이 공식 발표한 해외 M&A 규모는 올해 들어서만 총 960억달러에 이른다. 이미 지난해 870억달러를 넘어섰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현금자산을 최대한 비축한 데다 엔화가치가 오른 것도 구매력을 크게 높였다.
올해 3월에는 화학·소재기업 아사히카세이가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의료장비업체 졸메디컬을 20억6000만달러에 전액 현금인수한다고 발표했고 같은 달 무역상사 마루베니가 오마하주의 미국 3위 곡물업체 가빌론을 총 56억달러에 인수했다. 7월에는 일본 최대 광고기업 덴쓰가 영국 미디어기업 이지스그룹을 45억달러에 사들여 세계 5위 광고기업으로 거듭났다.
또 8월에는 냉방·공조기기 업체 다이킨공업이 미 휴스턴의 굿맨글로벌그룹을 37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고, 9월에는 이토추상사가 세계 최대 청과회사인 돌 푸드로부터 포장식품 및 아시아지역 청과사업을 17억달러에 매입했다. 여기에 소프트뱅크가 스프린트 지분 70%를 약 201억달러에 인수하려 한다.
홍콩 HSBC은행의 프레데릭 뉴먼 아시아태평양지역 리서치공동대표는 “일본 기업들에게 인수자금 조달은 놀라울 정도로 수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미 버블붕괴의 긴 터널을 지나 온 일본 은행들은 미국·유럽 은행들에 비해 훨씬 건전한 재무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은행의 제로금리 정책도 일본 기업들의 해외기업 쇼핑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일본 정부도 엔고 대책으로 기업들의 해외 M&A를 적극 장려하면서 은행들의 대출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을 통해 일본 3대 대형은행에 신용을 공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뉴먼 대표는 “일본 은행들은 계속 확장을 원하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더 이상 뻗어나갈 기회가 없다”면서 “엔고, 충분한 투자여력, 위축되는 국내경제의 3대 요소가 일본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는 데 막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인수가 대부분 미국 기업들에 집중되는 것도 특징이다. 비록 일본이 지난 1980년대 버블경제 시절 미국 부동산에 대거 투자했으나 별다른 수익도 내지 못한 채 물러났던 적이 있지만, 당장은 미국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연말 재정절벽 등의 위험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지만,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보다는 회복 기미를 보이는 미국의 투자전망이 낫기 때문이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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