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 국사편찬위원회가 현행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을사늑약'이라는 표현을 '을사조약'으로 바꾸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김태년 의원(민주통합당)은 국사편찬위로부터 제출받은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본심사 합격본 수정보완대조표'를 분석한 결과, 심사에 합격한 9개 출판사의 검정 교과서 일부가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으로 수정됐다고 9일 밝혔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국사편찬위는 2개 출판사의 역사교과서에 대해 한·일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으로 수정할 것을 권고했다.
한 출판사는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을사조약은 일본이 강제로 체결하는 바람에 명칭조차 써넣지 못했고, 이후 을사년에 체결된 조약이라는 뜻으로 을사조약으로 불려왔을 뿐"이라며 "강제성과 불법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을사‘늑약’으로 표기해야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소신을 밝혔으나 결국 '을사조약'으로 수정했다.
을사늑약은 일본이 1905년 대한제국을 강압해 체결한 조약으로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 등 국권이 일본에 넘어간 사건이다. 일본의 사관에서는 ‘조약’이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불평등한 ‘늑약’으로 평가돼왔다.
국사편찬위로부터 검정교과서로 채택돼야만 공신력 있는 교과서 업체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국사편찬위의 요구는 명목적으로는 권고이지만, 사실상 지시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밖에도 국사편찬위원회는 일본 역사를 설명하면서 ‘국왕 중심의 새로운 정부’라고 기술한 교과서 출판사에게 관련 대목을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부’로 수정하라고 권고했다. 김태년 의원은 이를 두고 "국사편찬위가 근현대사 영역에서 일본 편향적 교과서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출판사의 경우, 1987년 한국 민주화 운동사를 기술한 부분에서 경찰의 최루탄을 맞아 피흘린 채 동료의 부축을 받고 있는 이한열 열사의 사진을 교체했다. 국사편찬위가 "학습자가 중학생임을 고려해 직접적이고 참혹한 사진 제시에 대해 재고려하라"며 다른 사진으로 교체할 것을 권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진은 당시 명동성당에 모인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 사진으로 바뀌었다.
김태년 의원은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서울대 교수시절 누구보다 앞장서서 한일병합의 불법성을 이야기하고, 을사조약보다는 을사늑약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소신있는 학자였다"며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그런 학자의 소신도 무너뜨리고 반역사적 용어로 교과서 수정을 지시한 것은 통탄할 수준”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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