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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법정진실게임’ 라응찬 입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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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다음달 법정에 증인으로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2010년 신한사태로 나란히 불명예 퇴진한 신한금융지주 경영진 3인방을 둘러싼 법정 ‘진실게임’이 나날이 흥미를 더해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설범식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에 대한 공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재판은 “부실대출로 은행에 손해를 입히고 은행자금을 빼돌렸다”며 신한은행이 2010년 9월 2일 신 전 사장을 검찰에 고소하면서 비롯됐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차명계좌로 관리하던 50억원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건넨 의혹 관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수사를 종결한 직후다.


검찰은 3개월 가량 신한은행 경영진의 혐의를 저울질하다 ‘횡령에 관여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라 전 회장을 제외한 채, 신 전 사장, 그리고 사실상 신 전 사장을 고소한 이 전 행장만 재판에 넘겼다.

재판부는 故이희건 신한금융지주 명예회장에 대한 자문료 명목으로 조성된 자금의 운용과 관련 자문료 조성을 책임진 라 전 회장, 신 전 행장, 이 전 행장의 비서실장 출신 신한 임·직원들을 차례로 법정에 증인으로 세웠다.


검찰은 신한은행 경영진이 명예회장 자문료를 사실상 비자금처럼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비서실장 대다수는 법정에서 자문료는 대부분 명예회장의 의전비용 등에 사용되거나 “은행 일에 필요하면 쓰라”는 이 명예회장의 취지에 맞춰 쓰여졌다고 진술했다. 간혹 은행장 업무추진비와 자문료가 교차된 정황 역시 자금이 부족할 경우 부족분을 메운 뒤 다시 채워넣는 비서실의 관행으로 실제 회사돈이 빼돌려진 적은 없다는 진술이 줄을 이었다.


검찰은 재일교포 주주가 기탁한 5억원 등 15억원 안팎의 비자금 조성을 신 전 사장이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법정에 나선 증인들은 라 전 회장의 개인 변호사비용 명목으로 쓰이는 등 ‘경영진’ 일체의 비용이라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검찰이 기소한 ‘경영진’에서 라 전 회장만 쏙 빠진 정황을 둘러싼 공방도 흥미롭다. 신 전 사장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이동식 저장장치(USB)에 담긴 문건을 공개했다. 공개된 신한은행 내부문건은 ‘조직과 라 회장을 위해 신 전 사장 개인비리로 몰아야 한다. 다만 신 전 사장의 선처를 위해 노력하고 결과가 좋으면 은행이 적극 방어에 나선 덕분으로 간주돼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문건이 담겨있던 USB는 신한은행이 신 전 사장을 고소하기 직전인 2010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이 전 행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변모씨로부터 나왔다. 변 전 실장은 신 전 사장이 재판에 넘겨지는데 기여한 단서 중 하나인 자문료 명목 15억원이 현금화된 정황을 담은 자금흐름표를 ‘사무실 책상 서랍 틈’에서 발견한 인물이다.


라 회장을 둘러싼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뒤이어 신 전 사장측 변호인이 법정에서 공개한 또 다른 USB에선 ‘면담 대상자 명단’이라는 이름 아래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현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줄줄이 적힌 명단이 나왔다. 문제의 명단은 앞서 박연차 회장에게 건네진 50억원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 관련 라 전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작성된 것으로 정·관계 로비 정황이 제기된 셈이다. 이 USB는 라 전 회장의 고교 후배이자 당시 비서를 지낸 박모 신한은행 본부장으로부터 나왔다.


검찰이 증거 부족을 이유로 라 전 회장을 기소대상에서 제외한 직접적인 배경인 ‘3억원 당선축하금’ 의혹도 현재 진행형이다. 검찰은 앞서 수사 과정에서 이 전 행장이 ‘라 전 회장 지시’라며 3억원을 마련해 2008년 2월 남산자유센터 정문 주차장에서 성명불상자에게 현금 3억원을 전달한 정황을 포착했다. 3억원 운반에 직접 가담한 송모 전 신한은행 비서실 부실장은 지난 7월 법정에 나와 “은행관계자로부터 정치권으로 넘어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치권과 관련된 돈이니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말고 ‘관련 진술을 번복하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문제의 3억원이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7억 5000여만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에게 건네진 ‘당선 축하금’ 명목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라 전 회장 등 당사자가 직접 입을 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중순 라 전 회장도 직접 증인으로 법정에 세울 예정이다. 검찰 조사 및 그간 법정에 나선 증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라 전 회장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을 당시 변호사비용 마련 등 구명활동을 진두지휘한 신 전 사장 등만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의혹의 중심에서 홀로 재판을 피한 라 전 회장의 입이 주목받고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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