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시간지나 권리주장 안돼"…재판부, "재심 확정이전 배상 청구 힘들었던 점 인정"
[아시아경제 지선호 기자] 5·16 군사정권 하에서 북한을 돕는 단체 결성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인의 유가족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한다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왔다.
대법원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5·16군사정변 직후 '밀양 피학살자조사대책위원회' 결성해 북한을 돕는 활동했다는 혐의를 받아 혁명재판소에서 징역 10년을 선고 받고 복역한 김모(사망)씨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유가족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가 망인을 불법으로 체포해 장기간 수감하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노력을 하지 않은 채 45년을 방치하는 불법을 저질렀다"며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정부의 주장은 권리남용이다"라고 밝혔다.
지난 1960년 6월 김씨는 한국전쟁 중 발생한 경남밀양지역의 양민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피학살자조사대책위원회'를 결성해 활동했다. 하지만 1961년 5·16군사정변이 발생하고 불과 이틀 뒤인 5월18일 영장도 없이 체포됐다.
혁명검찰부는 김씨를 기소했고, 김씨는 혁명재판소에서 피학살자조사대책위원회가 북한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면서 조직을 결성했다는 등의 이유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이후 항소해 10년으로 줄었고, 1965년에는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2007년 김씨의 조카는 이 사건을 조사해달라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요청했다. 위원회는 김씨의 불법성을 인정할 증거가 없었지만 혁명재판소가 특별법을 3년6개월이나 소급했다며 정부가 재심절차를 취하고 명예회복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후 2010년 7월 유가족은 재심을 받아 부산고법에서 이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얻어냈다.
1심 재판부는 김씨와 그 유가족들이 평생을 사회적 냉대 속에 신분상, 경제상의 각종 불이익을 당했음이 넉넉히 인정된다며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하고, 유가족 17명에게 적게는 14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3억14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부가 "문민정부 이후에는 손해배상청구를 하는데 걸림돌이 없었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재심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2010년 7월까지 유가족들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 역시 1심 판결을 인정하고 정부가 손해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지선호 기자 like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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