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구타, 금품갈취 등 역할극 통해 유쾌하게 학교폭력 재해석
[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 ‘일진’이 아닌 학생들의 일진 연기는 실제를 방불케 했다. 왕따, 구타 등 학교폭력의 단면을 연기하는 학생들의 눈빛 역시 한 없이 진지했다.
또래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생들은 스스로 힘으로 꾸민 역할극을 통해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되새겼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며 우정의 소중함도 깨달았다.
제1회 학교폭력 사례 역할극 발표회가 6일 오후 서울 중구 구민회관에서 열렸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차원에서 마련된 이번 행사에는 중구 관내의 5개 중학교가 참가했다.
발표회장을 찾은 인원만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포함해 500명 이상이었다. 학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모여든 학생들로 행사장 분위기는 뜨거웠다.
이런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달리 무대에 오르기 위해 대기 중인 학생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로 대사와 동작을 맞춰 보는 대기실 풍경은 프로 연기자들의 모습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일부 학생들은 연출을 위해 시도한 눈 화장과 의상까지 꼼꼼히 점검했다.
첫 무대는 대경중학교 학생들이 장식했다. ‘일진의 일기’라는 역할극을 통해 10명의 참가학생들은 왕따의 심각성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공연 초반부에는 무대에 오른 모든 학생들이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 맞춰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내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고, 학생들의 야무진 춤 솜씨에 선생님들도 폭소를 터트렸다.
이어진 금호여중과 장원중, 창덕여중, 한양중의 공연에서도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유쾌한 재해석은 계속됐다. 왕따, 구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느끼는 심리적 묘사 표현에도 열중했다.
금호여중 학생들의 경우 일진 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친구 사례를 통해 학생 스스로의 자각이 중요하다는 점을 소개했다. 한양중 학생들이 펼친 공연에서는 학교폭력의 유형과 관련 처벌 내용이 포함되기도 했다.
공연에 참석한 학생들은 지난 여름방학 동안 무대에 오르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공연 구성을 위한 아이디어 회의와 실제 연기 호흡을 맞추는 데만 꼬박 두 달의 시간을 투자한 셈이다. 함께 땀 흘리고 동고동락한 만큼 친구들 사이의 우정 역시 두터워 졌다.
공연에 참석한 대경중 3학년 최승현 군은 “역할이나 무대 구성을 놓고 친구들과 작은 다툼이 있을 정도로 친구들 모두의 열의가 대단했다”며 “이번 역할극에 참가하면서 친하지 않았던 친구들과 많이 친해진 것 같아 흐뭇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자리에 함께한 지도교사들도 긴장된 모습으로 학생들의 공연을 지켜봤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어깨를 두드리며 용기를 북돋았고 공연을 마친 이후에는 수고의 의미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학교폭력에 대한 학생들의 심각성 제고를 기대한다는 선생님 반응도 이어졌다. 대응중 공연팀의 박상진 지도교사는 “학생들이 역할극을 하면서 ‘이래선 안 되겠다’ 하는 각성의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며 “이런 좋은 취지의 행사들이 다른 지자체들은 물론 전국적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창식 중구청장 역시 “학교폭력의 우리 교육현장의 심각한 문제임에도 여전히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며 “학생들 스스로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오늘의 역할극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완성도와 호응도, 효과성 등을 기준으로 한 심사에서 장원중의 ‘내 친구 정미의 이야기’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어 우수상에는 대경중과 금호여중, 장려상에는 창덕여중과 한양중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나석윤 기자 seokyun1986@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