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50년 전(1962년) 발간된 한 권의 책은 인류에게 거대한 충격을 안겨 줬다.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주인공이다. 만물이 생동하고 깨어나는 계절의 여왕 봄에 침묵하다니 뭔가 불길하고 음산하기까지 했다.
저자인 레이철 카슨은 당시만 해도 '기적의 화학물질'이라고 찬사를 받던 각종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들이 생태계와 인체에 미치는 온갖 해악을 낱낱이 밝혀냄으로써 현대 과학문명이 환경오염과 환경훼손의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냉정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환경의 개념이나 의미가 분명하지 않았던 시기에 카슨이 던진 경고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20세기 들어 비약적 발전을 거듭한 인류의 과학적 능력은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원초적 진실을 외면할 정도로 파괴적으로 변해갔다. 어찌보면 DDT를 발명해 노벨상을 받았던 스위스의 화학자 폴 멀러의 상은 취소되는 것이 정당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환경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어떤 종류의 '발명품'도 환영받지 못하고 어떤 명분의 경제행위도 거부당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21세기 들어 우리는 살충제보다 더 파괴적인 지구온난화라는 거대 '괴물'과 사투를 벌여야할 운명에 처했다. 인류가 자동차 등 각종 문명의 이기의 '노예'로 전락하는 동안 이산화탄소 배출로 태양과 지구 사이에 거대한 탄소의 막이 형성되면서 지구는 서서히 뜨거워졌다. 과거에도 홍수와 가뭄이라는 재앙은 있었으나 근래처럼 그 해악이 크고 잦지는 않았다. 특히 지난해 7~11월 태국에 내린 비는 대재앙의 서막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짜오프라야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태국의 수도 방콕을 포함한 전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국가적 수몰상태에 이르렀다. 이 홍수로 최소 740명이 사망했고 피해액은 약 51조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이 물에 잠길 때 지구 반대편인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선 60년 만의 가뭄으로 에티오피아 460만명, 소말리아 400만명, 수단 400만명, 케냐 375만명, 남수단 150만명, 지부티 18만명 등 약 1800만명이 가아에 허덕였다.
이 같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대재앙은 무분별한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자연의 복수'로 보는 관점이 유력하다. 그래서 소위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자는 차원에서 지구촌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안해낸 것이 교토의정서다. 이는 선진 38개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적 기후변화협약으로 1997년 12월 일본의 교토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합의됐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이해가 엇갈려 사실상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세계 2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이 탈퇴하고 제1배출국인 중국이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감축대상에서 배제됨으로서 전 지구적 노력에 한계를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제1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선 올 연말 만료되는 교토의정서 시한을 연장하는 데 합의해 일단 규약 공백사태만은 막았으나 의무감축대상국인 선진국들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과연 전 지구적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을지 지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구의 온도가 높아질수록 환경재앙이 심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금 인류의 미래는 지극히 위험스러워 보인다.
앞으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의 온도상승은 언제 멈출지 가늠하기 어려우며, 그동안 우리 인류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최악의 환경재앙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나라도 환경재앙에 대해 냉철하게 자각하고 철저한 대비책을 수립해야 한다. 태국의 홍수와 아프리카의 가뭄이 언제든지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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