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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동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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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동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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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임금노동자이거나 자영업자입니다. 유명한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의 수는 매우 적을 뿐 아니라 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취업지망생들은 여전히 대기업 취업을 소망합니다. 대ㆍ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는 너무 뚜렷하니 비판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대기업 명함이 있어야 결혼할 수 있으니 별 수 없습니다"던 한 남학생의 말이 생각납니다. 취업지망생들이 적성이나 취향에 따라 기업을 선택할 뿐, 대기업을 반드시 선호하지 않는, 예컨대 대만과 같은 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까요?


중소기업에 관련된 공부를 하다가 배운 몇몇 희한한 용어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처음에 완전히 오해했던 말이 '구두발주'였습니다. 기업 사이에 거래를 하는데 계약서도 없이 주문과 납품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우리나라의 신용수준이 참 높아졌구나'라고 잠깐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완전한 착각이었습니다. 구두발주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업자가 하도급업체에 일단 제품을 납품하도록 한 다음 가격과 대금지급 방식 등을 결정하는 것으로 발주취소나 부당한 단가인하로 이어지기 쉬운 대표적 불공정거래 관행입니다.

자주 듣게 되는 말 가운데에는 '인력ㆍ기술 탈취'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온갖 노력을 통해 기술혁신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대기업이 주요 인력을 스카우트하거나 납품관계를 빌미로 정당한 값을 치르지 않고 중소기업의 기술을 흡수해버린다는 말입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자주 발생한다면, 혁신의 이익을 차지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기술혁신에 무관심해지게 되므로 우리나라의 국가혁신 역량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저를 당황하게 한 것은 이런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중소기업들이 공정거래위원회나 법원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한결같이, 설령 제도적ㆍ법적 수단을 통해 시정이 이루어진다 해도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망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을 토로합니다. 이런 두려움은 사실 근거가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장기화된 대기업 대상의 재판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파산한 중소기업의 사례를 꽤 찾을 수 있으니까요. 강력한 법률적인 조력을 받고 있는 대기업을 상대로 중소기업이 제소나 소송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이겼다고 하더라도 경제적 실익 또한 크지 않습니다. 손해액의 배상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 여러 대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거래하게 되는 기업들의 기술을 에스크로하는 제도는 이미 도입됐고(기술임치제도), 대기업과의 납품단가협상을 중소기업협동조합이 대신하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불공정거래로 인해 입은 손해의 3~10배 정도를 대기업이 보상하는 방안이지요. 이쯤 되면 긴 재판기간과 거래중단 등으로 입게 될 잠재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이 법률적 수단을 동원할 유인이 생길 겁니다. 그러나 반대도 적지 않습니다. 18대 국회에서 위헌논란이 있었고, 소송의 급증으로 사회적 비용이 커질 것이라는 의견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저는 이 논의가 더 뜨거워지길 원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그리고 여전히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는 동반성장이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좀 더 잘 알게 될 것 같아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의 과정을 정신차리고 지켜보려 합니다. 대선주자들의 공약과도 견주어 보면서 말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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