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 이현주 기자] #직장인 허윤희(가명·30)씨는 친구들과 노량진의 한 고기전문점에서 점심특선 메뉴를 먹다가 원산지 표기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불고기, 김치찌개, 차돌된장찌개가 한 세트로 묶어 6000원에 판매되는 점심특선 메뉴의 재료가 모두 미국산이었다. 심지어 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다수 고객들은 원산지보다 가격에 더욱 눈길을 주며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허씨는 “얼마 전까지 미국산 쇠고기라면 깜짝 놀라던 사람들이 맞나 싶다”고 말했다.
식탁에 미국산 쇠고기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미국에서 광우병 젖소 파동 이후 국내 외식업체들은 미국산 쇠고기 대신 호주산, 뉴질랜드산으로 대체했다. 불가피하게 미국산을 쓸 수밖에 없는 경우라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그러나 2개월이 지난 현재 일부 식당에서는 언제 그랬냐는듯 원산지에 당당히 미국산임을 드러내고 있다. 소비자들도 '싼맛에' 혹은 '광우병 파동이 한 차례 지나갔다'는 생각에 미국산 쇠고기를 찾는 상황이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를 찾는 고객 발걸음이 다시 늘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재료로 사용하는 외식업체들도 굳이 미국산이란 걸 숨기지 않는다. 두 달 전까지 미국산이란 걸 쉬쉬하던 것과는 판이한 분위기다. 아모제가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 마르쉐에서는 최근 떡갈비 스테이크 메뉴에 미국산 쇠고기라는 표시를 다시 붙여놓았다. 이 매장에서 판매하는 스테이크는 전부 미국산. 돼지고기를 재료로 하는 바비큐 폭립은 수입산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마르쉐 관계자는 “광우병 발생 당시에는 워낙 여론이 거세게 불어서 콘셉트가 아메리칸 레스토랑임에도 불구하고 원재료가 미국산임을 강조하지는 않았다”면서 “지금은 좀 잠잠해져서 굳이 쉬쉬하며 숨길 필요는 없게 됐다”고 말했다.
더스테이크하우스바이빕스는 광우병 파동 당시 없앴던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오히려 고객들이 먼저 재출시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빕스에서는 광우병 파동 전까지 미국산 등심과 꽃등심을 사용했다. 그러나 지난 4월 말 미국산을 호주산으로 대체하고 대체 불가능한 메뉴는 아예 없애버렸다. 빕스 관계자는 “일부 고객들이 이 메뉴가 미국산임을 알면서도 찾고 있어 재출시하게 될지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패밀리레스토랑이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는 것과는 달리 일부 식당에선 아예 미국산 쇠고기판이 됐다.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하고 있는 노량진의 한 정육점 관계자는 “두 달 전에는 TV 등에 광우병 쇠고기 관련한 보도가 연일 나오면서 타격을 받은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매출이 다시 광우병 사태 이전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기전문점 관계자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싸고 질 안 좋은 고기가 더 잘나갈 때도 있다”며 “이 동네 사람들은 잘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미국산 소갈비살(300g)은 1만1000원으로 시중에서 판매하는 국내산 돼지고기 오겹살(300g·1만4000원)보다 더 저렴했다.
한편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1053개 대형 유통 매장의 미국산 쇠고기 판매액은 광우병 발생 후 미국산 쇠고기 소비가 급감했던 5월 둘째주 2억8806만원과 비교해 한 달 만인 6월 둘째주 기준 5억9162만원을 기록, 2배 이상 늘었다. 또한 농식품부는 광우병 발생 당시 3%에서 50%로 확대했던 미국산 쇠고기 박스 개봉검사 비율을 지난달 말 다시 3%로 되돌렸다.
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검역강화 조치도 해제된 상황이어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소비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그동안 쉬쉬하면서 미국산인데도 국산으로 둔갑시키며 소비해왔는데 이제는 거부감이 좀 덜해졌으니 대놓고 미국산이라고 표기해도 큰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
이현주 기자 ecol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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