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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에서 닉 릭슨, 그리고 11.11까지..투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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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지난해 10명이 넘는 증권사 대표이사들이 ELW에 투자하는 스캘퍼(초단기투자자)에게 전용투자선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다. 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잘 나가던 ELW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이로 인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특징인 파생상품 시장이 일반에 많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위험성만 지나치게 부각된 측면이 강했다.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이 연임 확정 후 "금융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파생상품시장이 발달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부정적 인식을 의식한 발언이다. '파생상품=투기'라는 인식을 넘어서야 금융산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파생금융상품 시장의 역사는 일천하다. 한국증권거래소가 1996년 KOSPI 200주가지수를 거래대상으로 하는 KOSPI 200선물을 상장하면서 최초로 파생상품 거래가 이뤄졌다.


그렇다면 파생상품의 기원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이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적은 돈을 베팅해 그 몇 배 혹은 몇 십 배의 이익을 얻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 지닌 속성이기 때문에 이 사회가 처음 생기기 시작한 무렵부터 존재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선물(?) 투자 일화는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의 올리브 압착기에 대한 투자다. 가난한 철학자였던 탈레스는 점성술로 그 해 올리브가 대풍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올리브 열매가 열리기 전, 그 지역의 모든 압착기 소유주에게 선금을 주고, 탈레스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압착기를 빌릴 수 있는 권리를 계약했다. 실제로 그 해 올리브는 대풍작을 이루었으며 탈레스는 그가 빌린 계약금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에 압착기를 빌려주었다. 올리브 생산자들은 어쩔 수 없이 높은 가격에 압착기를 빌렸고, 탈레스는 이 거래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근래에 와서 가장 유명한 선물투자는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를 들 수 있다. 튤립 구근은 6월과 9월 사이에만 매매할 수 있었으나 네덜란드인들이 선물거래를 기획하면서 거래가 활발해지고 가격도 급등했다. 판매자가 예정된 날짜에 미리 합의한 가격으로 튤립을 제공하기로 약속하면서 한 해 내내 튤립 거래가 이뤄질 수 있었다.


특히 판매자들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튤립 구근을 미리 판매하고, 나중에 그보다 낮은 가격에 튤립 구근을 사들이는 ‘공매도’ 방식의 투기가 성행하게 됐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무차입 공매도는 400년전 이미 똑똑한(?)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었다.


선물 투기 덕에 튤립 구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튤립 구근 하나가 집보다 비싸게 거래됐다. 스코틀랜드의 찰스 매케이가 튤립 거품 붕괴 4년후 지은 '대중의 미망과 광기'란 책에서는 튤립 구근 하나로 살 수 있는 물품의 목록을 적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밀 2마차분(550ℓ), 호밀 4마차분(1100ℓ), 살진 소 4마리, 살진 돼지 8마리, 살진 양 12마리, 와인 큰통 2개(약 200ℓ), 맥주 4배럴, 버터 2t, 치즈 1천 리브르, 침대 하나, 양복 한 벌, 은제 컵…


이랬던 튤립 가격은 1637년 2월, 단 며칠만에 거의 '제로(0)'로 떨어졌다.


360년후, 닉 릭슨이라는 한 젊은이가 2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베어링은행을 파산시키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1989년 결제부 직원으로 입사한 닉슨은 역량을 인정받아 베어링은행 싱가포르 국제통화거래소 개설과 함께 선물 및 옵션 거래 딜러로 활동한다.


초기에 오사카 시장과 싱가포르 시장의 가격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올렸던 릭슨은 이후 손실이 생겼는데도 이를 감췄다. 손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자 릭슨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 도박성 투자를 하게 된다. 일본 엔화에 대해 콜옵션과 풋옵션을 동시에 매도, 엔화가 일정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면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가격대를 벗어나면 손실이 무한대로 늘어난다.(몇해 전 잘나가던 수출 중소기업들을 강타했던 '키코(KIKO)'와 유사하다.)


당시에도 안전자산의 대명사였던 엔화였기 때문에 릭슨의 도박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1995년 1월18일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다. 세계 증시는 폭락했고, 엔화 가격도 급락했다. 베어링은행은 결국 파산했고, 네덜란드 ING에 단 1달러에 매각됐다.


15년후 대한민국. 2010년 11월11일은 옵션만기일이었다. 장 마감을 10분 앞두고 동시호가에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시장 분위기는 좋았다. 1966대에서 시작한 지수는 동시호가에 들어갈 무렵, 1976을 넘었다. 동시호가 초반에도 매수세가 들어오면서 1980은 무난히 넘는 분위기였다. 그해 연중 최고치였다. 이대로 간다면 2007년 11월 이후 3년만에 2000 돌파도 하루 이틀 내에 가능해 보였다.


장 종료를 몇분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KOSPI200에 포함된 대형주들이 일제히 폭락했다. 투자자들은 동시호가 상황이니 주문이 잘못 들어간 것이니 곧 정상화 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그래도 장은 끝났다. 1980을 넘을 것 같던 지수는 1914.73으로 마감됐다.


도이치증권 창구 한 곳을 통해 2조원 이상의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거래로 천문학적인 돈을 번 투자자와 함께 시쳇말로 '쫄딱' 망한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와이즈에셋이란 운용사는 이 한 거래로 무려 900억원을 잃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던 와이즈에셋이 천문학적 손실을 입은 것도 닉 릭슨이나 '키코'와 투자의 기본 얼개는 비슷하다. 보통 옵션 만기일때는 수십, 수백배 기대수익을 바라고 터무니 없는 가격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있다. 국내 기관 중에는 그 가격대에 반대 포지션을 취함으로써 이런 눈 먼 돈을 가져가는 곳들이 있었다.


매달 몇억원씩 수익이 나는데다 리스크도 그리 크지 않는 수지남는 투자였다. 하지만 고베 대지진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도이치증권발 옵션쇼크가 벌어졌고, 몇억원을 벌자고 한 투자가 1000억원 가까운 손실로 이어졌다.


파생상품은 현물거래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다. 하지만 현물이 수반되지 않고, 증거금만 있으면 되다보니 투기성만 지나치게 부각되는 측면이 강하다. 지금까지 투기의 역사에서 대형 사고를 친 이들은 상품 고유의 헤지(위험회피) 기능을 외면한채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만 추구했기 때문이다.


모든 투자에는 위험이 따른다. 레버리지 효과가 클수록 위험도 커진다. 이를 간과할 때 불행한 역사는 반복된다.




전필수 기자 philsu@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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