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의 여정은 고단하다. 매 시즌 팀당 133경기를 소화한다. 가장 힘든 건 투수진. 마운드에서 선발, 구원에 관계없이 체력을 소진한다. 최근 몇몇 구단들은 5선발이 아닌 6선발 로테이션을 지향한다. 물론 부상, 부진 등 다양한 이유로 계획은 자주 차질을 빚는다. 5선발 체제에 대한 감독들의 고민은 생각보다 깊다. 화요일 선발투수를 나흘 뒤인 일요일 다시 마운드에 세우는데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몇몇 감독들은 에이스나 외국인 또는 한창 컨디션이 좋은 투수를 화요일과 일요일 경기에 두 번 내보낸다. 이 경우를 제외하면 선발투수 대부분의 출격은 일주일에 한 번 꼴이다. 하지만 실제로 선발 로테이션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시즌을 마감하는 투수는 리그 내 소수에 불과하다. 부상 없이 얼마나 로테이션을 지켰느냐의 여부가 선발투수 평가에 있어 주요 잣대가 되는 이유다. 이는 팀 전력이 얼마나 탄탄한지도 함께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최근 선발투수들의 경기당 소화 이닝 수는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완투 경기도 드문드문 발견된다. 이 때문에 각 팀 사령탑들은 투수진 운영에 적잖게 애를 먹는다. 에이스급 투수들이 일주일에 한 번만 완투를 해준다면 답답함은 크게 사라질 수 있다. 승패를 떠나 불펜은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다음 경기에 대한 보다 여유로운 준비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는 꿈같은 일이 됐다. 18일까지 프로야구에서 완투나 완봉을 기록한 선발투수는 윤석민(KIA, 4월17일 넥센전 완투승 5월 11일 두산전 완봉승), 더스틴 니퍼트(두산, 4월13일 롯데전 완투승), 쉐인 유먼(롯데, 4월29일 LG전 완봉승) 세 명뿐이다. 이 가운데 두 차례 이상 경기를 끝까지 책임진 건 윤석민이 유일하다. 이 같은 경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짙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선수보호 차원에서의 투구 수 관리 때문일까. 아니면 승리에 집착하다보니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일까. 물론 능력 부족이라는 이야기도 적잖게 들린다.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지만 완투에 대한 의미와 관심, 가치 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전설적인 투수들을 기념해 만든 미국 메이저리그의 사이영상과 일본 프로야구의 사와무라상은 그해 리그 최우수 투수에게 각각 돌아간다. 1890년부터 1911년까지 활동한 사이 영은 완투의 대명사였다. 815경기에 선발 등판해 511차례 승리를 올렸는데 이 가운데 완투는 승리 수보다 많은 749번이었다. 완봉도 76번이나 해냈다. 물론 사이영상은 선발, 중간, 마무리의 구분 없이 모든 투수를 대상으로 한다. 사와무라상은 다르다. 선발투수로만 제한돼 있다. 후보 자격도 7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얻을 수 있다. 25경기 이상 등판, 15승 이상, 10경기 이상 완투, 평균자책점 2.50 이하, 승률 6할 이상, 200이닝 이상 소화, 150탈삼진 이상 등이다.
국내 프로야구는 탄생 31주년을 맞았지만, 아직 이 같은 상이 없다. 일반적인 부문별 타이틀 수상에 골든글러브, 최우수선수(MVP), 신인왕 등이 더해졌을 뿐이다. 이영민타격상이 존재하지만 이는 프로가 아닌 고교선수에게 주어진다. 최근 프로야구에 사와무라상의 기준을 적용하면 수상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완투 수와 소화 이닝에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 시즌 17승(5패)을 거둔 윤석민은 172.1이닝만을 소화했다. 완투도 세 번에 그쳤다. 지난해 16승(7패)과 15승(6패)을 각각 따낸 김선우(두산)와 니퍼트도 다르지 않다. 둘은 각각 175.2이닝과 187이닝을 책임졌다. 완투 역시 두 번씩에 머물렀다. 물론 일본에서도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는 건 아니다. 엄격한 7가지 기준에 막혀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다면 역대 프로야구 최고의 완투를 자랑하는 투수는 누구일까. 주인공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이다. 완투 비율은 무려 64.5%에 이른다. 10번 가운데 6번 이상이 ‘완투 쇼’였던 셈이다. 이는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언제부턴가 완투의 가치와 의미에 관심과 노력이 사라진 건 아닌지 걱정된다. 야구에서 선발투수의 비중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절대적이다. 그래서 투수에게 완투는 훈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마해영 XTM 해설위원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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