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사상 최대 실적이요? 기분은 좋지만 부담도 많이 느낍니다."
현대ㆍ기아차가 유럽에서 사상 첫 6.1%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자 그룹 고위 관계자는 '기쁨 보다는 우려가 깔린' 속내를 밝혔다. 유럽의 경제위기, 미국 빅3의 공세, 일본 메이커들의 부활 속에서 일궈낸 성과지만 현대ㆍ기아차는 오히려 경계심을 나타냈다.
최근 잇달아 가진 내부 행사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는 감지된다. 기아차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이형근 부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세계 대리점 대회에서 최근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풀지 말 것을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기아차의 성장에는 대리점들의 노력이 컸다"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앞으로 더욱 정진해야 한다"며 고삐를 늦추지 말아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수 대리점 딜러 초청 행사는 일반적으로 관광일정도 포함되지만 이번만큼은 세미나 위주로 진행됐다.
현대자동차 역시 해외법인에 이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현대차는 이달 초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북미지역 마케팅 회의를 개최한 자리에서 현지시장에서의 판매 향상에 따른 '자중'을 강조했다. 미국시장에서 매달 플러스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판매확대에 자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평소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정 회장은 좋은 내용의 보고를 받아도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위기, 긴장 등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마틴 빈터콘 폭스바겐 회장이 현대차 신형 i30를 타본 후 자사 임원을 질책하는 내용이 담겨 있던 동영상을 보고한 임원이 긴장한 사례가 최근의 예다. 기쁜 마음에 보고한 임원은 정 회장의 무표정에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현대ㆍ기아차가 유럽시장 위축에도 판매대수를 늘린 원동력은 '이성'이다. 흐름을 타기보다 이성적인 판단을 근거로 이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현대차와 기아차의 실적을 견인하는 요소라는 얘기다.
노키아, 소니 등 불과 4~5년 전까지 건재하던 세계적인 기업도 순식간에 도산하는 게 요즘이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누구도 우릴 넘볼 수 없다'는 오만이었다. 끊임없는 자기비판, 위기, 긴장이 현대·기아차의 경쟁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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