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방문해 골프까지 친 게 7~8년은 지난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관광공사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골프는 자본주의 스포츠"라고 규정한 북한에서의 라운드가 왠지 부담스럽고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토의 나라'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골프를 친다고 하니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앉힐 수가 없었다. 그것도 당초 5박6일의 일정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번개골프'다. 필자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바로 우리가 숙박한 양강도 국제호텔에 조성된 9홀짜리 양각도골프장이다. 새벽녁에 클럽하우스로 가니 젊은 여직원이 아주 친절하게 환영해 준다. 그린피와 캐디피, 골프채, 골프화, 골프공 3개, 장갑 등 1인당 30유로(약 5만원)를 지불했다. 캐디는 우리에게 "여기는 쇠채(아이언)만 필요할 뿐 나무채(드라이버)는 필요없다"고 하면서 손수레 카트를 밀고 앞으로 나가 안내를 해준다.
2000년 4월에 개장했다. 미니 파3홀로 구성된 9홀 규모로 전장도 926야드에 불과하다. 호텔에 투숙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해 외화벌이의 일환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클럽하우스 안에 들어가 물을 마시면서 진열된 상품을 바라보니 모자는 거의 다 미국의 타이틀리스트와 핑, 일본의 혼마가 대부분이었다. 대여채는 미국산과 일본산이 섞여 있었다.
공알 받침대(티)에 공을 올려놓고 연습스윙을 하며 티 샷을 준비하자 "싱글이십네까"라고 묻는다. 오랜 경력으로 연습스윙만 봐도 기량을 가늠할 수 있다는 자랑이다. 가장 긴 홀이 147야드, 짧은 홀은 67야드다. 6번 아이언 이상이 필요없다. 벙커가 2개, 그린도 평탄해 당연히 스코어가 좋다. 1시간이면 충분하다. 평양의 태성호 옆에 있는 18홀 정규코스와는 비교가 안되지만 평양 한복판에서 대동강변을 바라보는 플레이가 의미있다.
백구가 평양의 하늘 아래 붉은 깃발을 향해 날아갈 때는 북한이라는 생각도 잠시 잊는다. 골프는 역시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스포츠다. 라운드 후 클럽하우스 여직원과 기념 촬영을 하고 '양각도골프장' 이라고 쓰인 기념품을 하나 샀다. 여직원이 "저녁에는 늦게까지 맥주와 안주를 판다"는 안내를 한다. 호텔에서 양각도골프장을 내려다보니 라운드하는 골퍼는 아무도 없고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글ㆍ사진=김맹녕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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