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부정의 진상을 알 수 있는 보고서가 3일 나왔다.
조준호 공공대표를 위원장으로 한 진상조사단이 공개한 보고서는 조사단이 당초에 밝힌 총체적 부실의 모든 것이 그대로 담겨있다. 사무행정, 온라인투표, 현장투표 등 모든 것에서 허점이 드러났다. 보고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오류' '중단' '부실' '위반' '불신' '부정' '결함' 등이었다. 지도부의 책임론이나 일부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사퇴요구를 떠나서 어떻게 이런 수준에서 투표를 실시하려했고 민의를 대표하는 비례대표를 이런 방식으로 뽑으려고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온라인투표를 보자. 투표시스템은 사전 신뢰성검증이 절차적으로 전혀 시행되지 않았다. 총체적 부실이 발생했다. 시스템이 오류가 나니 투표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3월14일 오전10시40분 경 발생, 오전10시56분 시스템접속이 차단됐다. 오전11시27분 정상화됐다. 현장투표 첫 기표자 등록 시 프로그램 오류로 미투표자 전원이 현장투표 한 것으로 일괄 데이터처리 된 것이다.
철저한 사전 검증 부재로 빚은 중대실수이고 조치과정에서 중앙선관위의 통제와 지휘가 부재했다는 것이 조사단의 조사 결과다. 투표하는 과정에서도 추가로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다. 소스프로그램이 추가됐고 다시 수정이 2차에 걸쳐 발생했다. 유권자에 대한 사전 실명확인이 없어 실체 없는 당원이 존재할 가능성이 상존했다. 명부확정 후 유권자의 휴대폰번호가 수정 가능하고 실제 일부 투표자의 휴대폰번호 수정이 이뤄짐에 따라 실체하는 투표자인지 의혹이 발생했다.
온라인투표시스템의 개발 및 관리업체는 수의계약으로 이 사업을 땄지만 중대한 오류가 내재된, 완전하지 못한 투표시스템을 개발했다. 시스템을 관리할 능력도 운용능력도 없었다.
현장투표는 어땠을까. 조사대상은 135개 지역에 설치된 현장투표소였다. 중앙선관위에서 무효처리한 투표소를 빼고 조사단이 조사한 결과 100여개가 넘는 투표소(중복)에서 규정위반, 대리투표 의심사례가 발생했다. 11개 투표소에서는 선거마감일(3월18일)과 최종결과발표일(3월 12일)의 현장투표자수가 일치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분리되지 않는 투표용지가 존재하고 1인 단독개표 작업을 진행한 사례, 현장투표 집계결과 오류사례, 선거인인수와 투표용지수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 등이 있었다.
대리투표 및 대리서명 의심 사례는 61개 투표소에 이르렀다. 서명 위에 다른 필기구를 사용하여 서명을 수정하거나 동일인인데 현격하게 차이나는 글씨체, 선거인명부 선거인 서명란 대리서명, 선거인 서명란 다른 이름으로 서명 등이 주를 이뤘다.
종합해보면 조사단은 우선 사무행정상의 오류를 지적했다.
사무총국의 당원관리(입ㆍ탈당 및 당권 인정여부) 부실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관리 능력 부재로 인해 총체적 부실, 부정선거가 진행됐다는 것. 적정한 조건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업체와 수의 계약하고 선거관리위원이 아닌 사무총국 직원의 임의적 판단과 지시에 따라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수정하는 등 공정성을 보장할 수 없는 선거가 진행됐다.
현장투표에서는 중앙선관위의 역할이 지역 투표소 선거사무원의 양심과 관행에 의존하여 투표를 진행하고 보고된 결과를 집계하는 역할에 머물러 결과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부정, 부실 선거를 초래하였다.
온라인투표 문제점도 있다. 투표 와중에 시스템 수정은 불가하다. 부득이 수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엄격한 통제와 형상관리를 통한 철저한 관리를 하여야 함에도 그렇게 수행되지 않았다. 수차에 결친 프로그램의 수정은 투표함을 여는 행위와 같은 의혹을 불러일으켰고 뿐만 아니라 기표오류를 수반한 결함도 발생하여 투표 중단 및 투표데이터를 직접 수정하는 등 온라인 투표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잃었다.
특히, 앞서 진행된 청년비례대표 투표과정에서 동일한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사전에 개선되지 않고 오류를 반복한 것은 단순한 실무착오나 기술적 문제 수준을 넘은 심각한 선거관리 부실사례로 지적됐다.
현장투표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수의 투표소에서 다양한 형태의 부실?부정행위 등 선거관련 당규위반 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났다. 또한, 투표마감시간 이후에 온라인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적지 않은 수의 현장투표가 집계되어 투표결과에 대해 신뢰할 수 없게 됐다.
진상조사위는 총체적 부실,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정상적인 선거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거를 강행해 사태를 야기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사무총국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하며, 지역선관위와 선거사무원, 그리고 이를 묵인 방조 또는 방치한 단위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또한 "투표라는 중요한 의사결정에 필요한 시스템을 사전에 충분한 검증 없이 사용하여 투표가 중단되는 사태를 초래했다"면서 "이로 인해 잘못 표기된 데이터를 초기화 하는 등의 사례는 선거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상실하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조사위는 "이번 선거가 정당성과 신뢰성을 잃었다고 판단하기에 충분하며, 책임소재가 분명한 사안에 대해서는 당기위원회 회부 등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전체 당원과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재발방지대책 및 당 쇄신안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정희 공동대표는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하고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이 공동대표는 그러면서 "진상조사위가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저도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며 "어떤 경선 후보자들에게 어떤 부정의 결과가 담긴 표가 주어졌는지 백지상태로 전혀 알지 못한다"고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이 공동대표는 "사실을 더도 덜도 없이 낱낱이 드러내 행위 정도에 따라 관련자들이 철저히 책임져야 한다"며 "개인 사이의 관계, 유관단체와의 관계,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사실 관계를 밝히고 빠짐없이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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