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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속에 사라진 제약사 리베이트의 진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분 6초

<#10_LINE#><제목> 제약사 영업사원 사망사건의 재구성
<부제> 사건 보고서 조작여부를 조사하라
<나오는 용어>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이하 사노피) : 프랑스계 다국적제약사 사노피-아벤티스(Sanofi-Aventis)의 한국 지사.
리베이트 : 의약품 처방 증대를 위해 제약회사가 의료인이나 병원에 금품 혹은 향응 등을 제공하는 행위
영업사원 : 의사를 만나 의약품 정보를 제공하고 처방을 유도하는 일을 하는 제약회사 직원.
<#10_LINE#>
#1. 비가 쏟아지던 2011년 7월 11일 일요일 새벽 5시 40분. 사노피의 영업사원 강 씨와 부산 모 대학병원 교수 홍 씨가 만났다. 둘은 골프장에 가기 위해 부산울산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강 씨는 사망했고 홍 교수는 경상을 입었다.


#2. 비가 쏟아지던 2011년 7월 11일 일요일 새벽 5시 40분. 사노피의 영업사원 강 씨와 부산 모 대학병원 교수 홍 씨가 만났다. 둘은 또다른 대학병원 나 모 교수를 만나기 위해 부산울산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강 씨는 사망했고 홍 교수는 경상을 입었다.

#1과 #2의 유일한 차이는 두 사람이 만난 목적이 '골프'였는가 혹은 '나 모 교수와의 미팅' 때문이었냐다. #1은 사망한 강 씨의 유족, #2는 제약회사 사노피의 주장이다.


이 차이는 소송의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됐다. 지난 12일 서울행정법원은 '골프접대가 맞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골프접대는 업무의 연장이므로 산업재해를 인정하라'는 게 판결의 요지다.

하지만 판결이 난 지금까지도 사노피 측은 '골프접대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골프접대 사실을 인정하면 불법 리베이트 처벌과 사회적 비난을 받게 된다.


그래서 사노피는 좀 '엉뚱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제약회사'가 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였다.


유족 측의 주장과 법원의 판결문에 나온 여러 사실 및 정황들을 바탕으로 사노피는 다음과 같은 고민과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회사는 둘의 만남을 알지 못했다"라고 말할까?
애초 이 사건을 둘러싼 '쟁점'은 강 씨의 사망이 '업무 중' 일어난 것이냐 아니냐였다. 근로복지공단이 유족연급을 지급하는 판단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를 따지기 위해선 '골프'가 업무냐 아니냐를 판단해야 한다. 문제는 제약회사의 의대교수 골프접대는 '불법'이라는 점이다.


사노피 입장에선 두 사람의 만남을 '회사는 모르는 개인적 일'이라고 해버리면 간단하다. 설령 회사가 알았다 해도 사노피는 골프지시 사실이나 대금결제 내역 등을 증거로 남겨둘 정도로 어리숙한 제약사는 아니다. 실제 법원도 회사가 골프접대를 지시했다는 증거는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방법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문제는 홍 교수다. 회사 공식적이든 강 씨 개인적 일이든 의대교수가 제약사 영업사원과 골프를 치기 위해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홍 교수는 매우 곤란해질 수 있다.


한편 홍 교수는 매우 권위 있는 의사다. 영업사원 강 씨의 매출 20%를 책임지는 '큰 고객'이기도 하다. 사노피는 홍 씨를 잃으면 안 된다. 그를 살리기 위해선 회사가 인지한 것이든 아니든 '골프'라는 두 단어를 없애야 한다.


강 씨의 유족도 문제다. 회사가 인지하지 못한 개인적 골프 만남은 업무상재해가 아니므로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없다.


#"회사는 알았다. 하지만 골프가 아닌 다른 일이었다."
강 씨의 사고 당일 출장증명서에는 '고객의 회의참석 동반'이라 적혀있다. 또 사고 전날 강 씨는 상사 최 모 씨에게 출장사실을 보고했는데, 상사 최 씨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고 증언했다.


"강 씨가 사고전날 전화를 해, "홍 교수가 나 교수와 만나는데 같이 가자고 전화가 왔다"고 하면서 나 교수를 신규고객으로 만들 생각에 홍 교수를 따라 약속장소(모 대학병원)로 가겠다고 보고했다."


여기에 나 모 교수까지 '그런 사실이 있다'고 인정만 한다면 흠잡을 데 없는 경위가 된다.


이 스토리가 '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꾸며낸' 이야기라면 이렇게 꾸밀만한 충분한 동기가 있다.


즉 사노피와 홍 교수 입장에선 골프접대 리베이트 혐의를 받을 염려가 사라진다. 또 강 씨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보상도 받을 수 있다. 신규고객을 만나러 가는 일은 영업사원의 중요한 업무이기 때문이다.


강 씨의 유족은 '업무상' 발생한 재해이므로 유족급여를 지급하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요구한다. 이에 사노피는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적고 홍 교수의 사인을 받은 보고서를 근로복지공단에 보낸다.


◆의외의 변수…'근로복지공단'의 해석
공단이 '업무가 맞네요'하고 보상을 결정하면 모든 일은 문제없이 끝난다. 그런데.


공단의 해석은 전혀 의외였다. 공단은 나 교수는 강 씨가 판매하는 의약품과 상관없는 분야의 교수라 (신규고객을 확보하려 했다는 사실관계에) 객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즉 홍 교수의 사적인 만남에 강 씨는 '교통편의'만을 제공했으며, 이런 일에 대해 휴일근로 기록과 수당이 지급된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업무수행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공단은 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했다.


유족은 반발해 다시 심사를 청구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홍 교수를 접대하기 위해 골프를 치러갔던 것"이라는 새로운 증언을 더한다.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넣지 않은 것은 유족이 산재를 인정 받으려면 사노피의 협조가 필수적이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사노피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유족 측은 밝히고 있다.


그러자 이번엔 공단이 이런 이유를 댄다. "골프접대에 회사의 사전지시가 없으므로 업무상 접대라기보다 지인과 함께 사적으로 골프를 친 것"이라고 판정했다. 급여지급은 또 거부됐다.


결국 유족 측은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서 유족 측은 "골프접대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제약회사의 사고경위 조작 및 은폐 때문에 유족급여가 거부됐으니 이는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회사의 연루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법원의 판단은 간단했다.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단이다.


"강 씨는 자신이 담당하는 제품을 의사가 많이 처방하도록 하는 일을 한다. 방법은 골프와 술접대, 세미나 초대 등이다. 홍 씨는 강 씨의 주요 고객이다. 강 씨는 사고 전에도 홍 씨에게 5차례에 걸쳐 골프접대를 했다. 사고 당일에도 골프를 치러 가고 있었다. 회사가 골프접대를 지시했다는 자료는 없다. 하지만 영업사원의 골프접대 비용을 회사가 식대 등으로 보전해줌으로써 이를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업무상 사망으로 보아야 하니 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


법원은 사노피가 골프접대를 묵인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일단 사노피의 설명을 반박하는 유족 측의 논리를 살펴보자.


보고서 : "둘은 나 교수를 만나러 가기 위해 만난 것이다."
유족 측 : "교수를 일요일 새벽에 만나는 사람도 있나. 골프약속은 그 시간에 만난다."


보고서 : "강 씨의 출장보고서에는 '고객의 회의 참석'이라고 써 있다."
유족 측 : "골프 리베이트를 하면서 '골프'라고 보고서에 쓰는 회사가 있나?"


이 외에도 유족 측이 찾아내 법원에 제출한 정황들은 더 있다. 다국적제약회사들이 의사에게 어떻게 골프접대를 하고 있는지 그 방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 강 씨의 월간계획표에는 사고 당일 '홍 6:40 oooo골프장', '5:40 픽업'이라고 써있다.
2. 사고 당일 해당 골프장에는 홍 교수 지인의 이름으로 예약이 돼 있었다. 통상 교수 신분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3. 사고 전날 강 씨가 상사 최 씨에게 보고한 이유는 그래야 차후에 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4. 회사의 골프접대 지시를 입증할 자료는 없으나, 설령 있더라도 기밀자료로 취급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5. 과장 직책인 강 씨가 자비로 수차례 골프접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족 측이 사노피의 다른 직원들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골프접대 비용은 개인카드로 결재하고 차후 식대 등의 명목으로 보전해준다.


결국 강 씨는 홍 씨와 '골프를 치기 위해' 만난 것만은 분명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나 모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는 사노피의 보고서는 자동으로 '허위'가 된다.


법원은 골프접대 중 사망사고가 산업재해냐 아니냐만을 따져 판결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노피 측이 사건경위를 의도적으로 조작했는지 여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리베이트 사실을 감추기 위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사건경위 보고서를 조작한 파렴치한 행위가 된다. 조작된 보고서에 사인한 홍 교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유족급여 지급 문제와는 별개의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참고 : 이번 소송은 강 씨의 사망이 산업재해냐 아니냐만을 판단하기 위해, 근로복지공단과 유족 측이 다툰 사건입니다. 사노피는 소송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골프접대 여부에 대한 본인들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유족 측 주장(위 정황) 중 법원이 어떤 것을 인정하고 어떤 것은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의 묵인 아래 이루어진 골프접대로 보인다'고 판단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기사는 법원이 유족 측의 주장을 모두 인정했다는 전제 아래 쓰여진 것입니다. 또한 향후 2, 3심을 통해 결론이 뒤바뀔 가능성도 있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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