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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도 리베이트 악취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21초

현장해부<상> 주식시장 '소프트 달러' 생태학

'甲 운용사 - 乙 증권사' 공생 사슬


[아시아경제 정재우 기자] 지난 2009년 12월 하나UBS자산운용에 날아든 투서 한 장에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이 회사의 모 팀장이 증권사 법인영업 브로커에게 골프 접대는 물론 자녀 학원비 대납까지 요구했다는 내용이 구구절절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이와 관련한 제도 개선은 아직 요원하다. 운용사와 증권사의 암묵적인 리베이트 관행은 결국 펀드 투자자의 손해로 직결된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해 2월 ‘소프트달러 모범규준’을 제정하고 지난달 1일부터 관련 내용을 자율 공시하도록 했지만 업계의 반발로 이마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아시아경제신문은 펀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운용사와 증권사의 리베이트 실태와 개선 방안을 3회에 걸쳐 게재한다.


# 사례1. 남의 아들 유학 뒷바라지를 했다는 모 증권사 영업직원 A씨. 그는 B 펀드매니저의 아들 유학길에 동행해 현지 숙소와 학교 등록 등의 수속을 도왔다. 아이가 잘 도착했다는 사진까지 찍어 펀드매니저에게 보내는 정성을 보였다.

# 사례2. 매니저들 술자리에 결제하러 불려 다니는 모 증권사 영업직원 K씨. 본인들 술자리에 와서 계산해 달라는 펀드매니저들 덕분(?)에 누구보다 바쁜 연말을 보냈다. 법인카드 한도가 차면 개인카드를 사용해서라도 결제한다. 어차피 술값을 내주는 만큼 인센티브로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는 펀드 운용을 위해 증권사에 위탁매매 수수료를 지불하며 주식을 거래한다. 대형 운용사의 경우 증권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만 매달 수십억원에 달하니 증권사 법인영업부는 운용사 ‘갑’의 선택에 따라 실적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금융투자협회 위탁매매 수수료율 공시에 따르면 운용사가 지불하는 수수료율은 0.1~0.15%. 개인투자자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온라인 주식매매 수수료율이 0.015%임을 감안하면 7~10배가량 비싼 수준이다.


운용사가 이같이 높은 수수료를 내는 이유는 ‘소프트달러’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운용사는 증권사로부터 받는 리서치 서비스 등에 대한 대가를 ‘위탁매매 수수료’에 포함시켜 증권사에 지급하는데 이를 소프트달러라고 부른다. 양질의 리서치 보고서 서비스를 제공한 증권사에는 주식 주문 물량을 몰아줘 많은 수수료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진 것이다.


바로 이 과정에서 리베이트가 만들어질 여지가 생긴다. 운용사가 임의로 주문 물량을 배정하는 만큼 펀드매니저는 리베이트나 편의를 제공해주는 증권사에 주문을 몰아줄 수 있다. 계열 증권사에 높은 수수료를 적용해 제 식구 챙기기에 나설 수도 있다. 많은 자산운용사들이 거래증권사 선정 기준 규정에 의해 거래 증권사를 선정하고 있다고 하지만 외부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내부 규정이다.


이 관행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같은 비용이 펀드 자산에서 빠져나가는 투자자의 돈이라는 점 때문이다. 결국 운용사는 투자자의 돈을 가지고 ‘물량 배분’이라는 암묵적 권력(?)을 만들어 각종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는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부의 문제라고 전제하면서도 “제약사와 병원의 상호 리베이트 관행을 개선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듯 운용사와 증권사의 관계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며 “양측 누구도 먼저 이를 이슈화할 마음이 없다”고 털어놨다. 운용사는 리베이트를 제공 받는 대신 비싼 수수료를 적용해 증권사의 수익을 보장해주고, 증권사 입장에서도 비싼 수수료를 받을 수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금융당국이 서비스 수수료율 공개 등으로 이 같은 관행을 개선해 보려고 추진 중이지만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거래는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재우 기자 j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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