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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싫다하고...막을 장치 없고...위원회는 먼산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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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적합업종은 '中企 부적합 게임'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대·중소기업간 시장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지정된 중소기업 적합업종 및 품목이 헛돌고 있다. 총론에는 합의했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각론에는 여전히 대부분 품목에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형국이다.

중재자 역할을 했던 동반성장위원회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 이번 선정작업과 관련해 대기업은 물론 중소업계에서도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대·중소기업간 의견차가 커 선정작업에 난항을 겪기도 했던 두부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두부는 지난 11월 적합업종으로 선정돼 각 제품군별로 대기업이 확장·진입자제 혹은 철수키로 중소업계와 합의했다.

그러나 이같은 양측의 '약속'은 아직 시행 전이다. 중소업계를 대표해 신청한 한국연두부식품조합연합회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확장자제 기준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정할지, 중소 협력업체의 연구개발 지원을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를 논의해야 하는데 선정 후 아직 한번도 대기업측과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초 대기업이 철수키로 합의했다는 포장용 대형 판두부 제품의 경우 CJ제일제당만 이달 말까지 철수를 약속했을 뿐 풀무원·대상은 합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1위 풀무원은 선정 전부터 여태껏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추장·간장·된장 등 장류 제품은 적합업종으로 선정됐지만 오히려 해당 중소기업의 불만이 높아졌다. 9월 적합업종으로 선정될 당시 대기업은 저가제품 시장에서 빠지기로 했다. 그러나 선정 후 양측은 다섯 차례 만나 의견을 조율했지만 '저가'의 기준을 놓고 의견차가 커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다.


한국장류협동조합 관계자는 "적합업종을 제조업에 한해 선정하다보니 대기업계열 유통회사가 다룰 경우 손쓸 방도가 없다"며 "오히려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후 대기업들은 면죄부를 얻은듯 시장확대에 나서는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


대기업들이 대형마트에 공급하는 제품의 경우 가격을 8% 정도 올렸지만 중소업체들과 경쟁하는 저가형 제품은 올리지 않은 일을 두고도 반발이 거세다. 조합 관계자는 "여전히 판촉행위가 성행하는데다 나머지 중소기업 시장도 빼앗겠다는 심보"라고 말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은 아예 손을 떼라는 식의 수용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요구가 이어져 협상이 쉽지 않다"며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은 양보했고 과당판촉도 자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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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납품매장 오히려 더 늘어나 회사 문닫을까 고민"


순대 역시 적합업종으로 선정됐지만 중소업계는 볼멘소리다. 대기업인 아워홈은 사업축소를 약속했지만 반대로 납품처를 더 늘리고 있다고 중소업체들은 주장했다. 선정 후 양측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 적은 한번도 없다.


중소업계는 "사업축소를 약속했음에도 오히려 납품매장수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며 "더구나 아워홈의 경우 중소업체와 달리 중간벤더 없이 직접 납품하고 있어 원가 경쟁에 상대가 안된다"고 주장했다. 아워홈측은 "권고안이 나오기 전부터 홈플러스 등 3곳에 원래 납품했으며 약속한 내용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해명했다.


중소업계를 위한 조치임에도 이처럼 불만이 빗발치는 이유는 선정작업을 주도한 동반성장위원회가 무리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양측이 설익은 합의안을 내는 데 그쳤지만 성과를 내기 위해 섣불리 발표했다는 것이다.


적합업종 실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곽수근 서울대 교수는 "이번 작업을 진행하며 그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각 품목별 시장상황을 알게 된 건 의미있는 활동"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한 중소업체 대표는 "선정 후에도 나아진 게 없어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중견기업들도 대립에 가세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최근 자체 조사한 결과를 들어 적합업종 선정으로 중견기업 101개사와 우량 중소기업 36개사가 피해를 입을 것으로 내다 봤다. 이미 중소기업을 위한 다양한 보호장치가 있는 상황에서 과잉보호로 인해 기업의 성장을 막는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당장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초과이익공유제·동반성장지수 등 적합업종 외에도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 손쓸 여력이 없어서다. 위원회 관계자는 "사후 모니터링이 중요하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지만 인력부족으로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차 선정에서 16개, 2차 선정에서 25개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됐다. 가장 최근인 지난 13일 3차에서는 38개가 지정돼 총 품목은 79개에 달한다. 이는 당초 지난 5월 접수된 234개 품목 가운데 대기업 미진입 품목을 제외한 155개중 절반 정도에 해당된다. 나머지는 신청조건을 갖추지 못해 반려되거나 자진철회했다.


삼성·LG가 관여해 관심을 끌고 있는 데스크톱PC를 포함해 유기계면활성제, 배전반(2개) 등 아직 결정하지 못한 4개 품목의 경우 23일 별도 회의를 열고 논의를 정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여전히 입장차가 커 위원회가 직권으로 권고안을 강제할 가능성도 높다.


정운찬 위원장은 지난 3차 선정 후 "가급적 올해 안에 마무리 짓겠다"고 했지만 사후관리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못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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