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하, 14대 회장 선거 승리했지만 당초 약속한 류진 풍산 회장 영입 난항
[아시아경제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위기다.
이명하(54ㆍ사진) 씨가 지난 23일 서울 송파구 여성문화회관에서 열린 14대 회장 선거를 통해 새로운 수장에 선출됐지만 곧바로 암초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 당선자는 선거에 나서면서 "회장에 당선되면 외부 인사를 회장으로 영입하겠다"는 공약(公約)을 내걸었고, 이 점이 높이 평가돼 당선이 유력했던 최상호(56) 부회장을 불과 17표 차로 제치고 예상 밖의 승리를 거뒀다.
문제는 출발부터 '가시밭길'이라는 점이다. 이 당선자가 거명했던 류 진 풍산그룹 회장은 선거 직전 보도자료를 통해 "KPGA회장직을 맡을 의사가 없다"고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했다. 류 회장 측은 "골프계의 거듭된 제의에 대해 심사숙고했지만 뜻이 왜곡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회장직을 맡을 수 없다"면서 "이후 어떤 당선자의 요청도 수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물론 류 회장이 의사를 번복할 수도 있다. 실제 박삼구 현 회장은 2007년 12월 13대 회장 연임을 수락했다가 김덕주(68), 임진한(54) 등 일부 회원들이 경선 의사를 밝히자 "그룹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더 이상 회장직을 수행하지 않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적이 있다. KPGA는 그러자 후보들이 줄줄이 사퇴하고, 2008년 1월 회원총회를 통해 박 회장을 만장일치로 재추대해 간신히 13대 회장으로 모셨다(?).
이번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외부 인사의 회장 취임을 위한 정관 개정(박 회장은 당시 이미 명예회원으로 등록돼 정관 개정이 필요없었다)부터 걸림돌이다. 당연히 회원총회를 거쳐야 하고, 이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지면서 선수 출신 회장을 원했던 측과 다시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다. 류 회장이 일찌감치 언론에 "KPGA 회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일 수도 있다.
이 당선자가 그대로 회장직을 수행하는 '경우의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표심은 '투어 활성화'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선수 출신 회장의 능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졌고, 결과적으로 외부 인사가 사령탑을 맡아야 프로골프대회 증가 등 실질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2년 1월부터 시작되는 이 당선자의 4년간 임기가 공약(空約)으로 넘어가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KPGA의 장기 표류에 대한 우려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여자프로골프계에 비해 열세인 KPGA가 내년 대회 수 증가는커녕 불황 여파에 내부적인 불협화음으로 오히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선거에서 불거진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아예 투표권도 주어지지 않는 세미, 티칭프로들이다. KPGA는 현재 투어프로와 플레잉프로, 세미프로, 티칭프로 등으로 구분돼 있다. 이 가운데 세미와 티칭프로, 이른바 '준회원'들은 선거에 참여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4000명이 넘어, 수적으로는 엄청나다. 정회원(30만원)에 버금가는 연회비(24만원) 납부 의무도 있다. 권리는 주지 않고, 의무만 강요하는 셈이다.
한 세미프로는 "준회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이사회나 회원 총회를 통해 정관을 개정해야 하는데 구성원들 모두 정회원들이라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하다"면서 "지금의 구조에서는 아무도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라며 구조적인 문제점을 제기했다. 한국프로골프가 세계무대로 비상하고 있지만 협회만큼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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