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을 통한 시장 성장은 한계에 부딪혔다." "최근 월가 시위 등을 볼 때 기업 생태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표현되는 시장경제 체제와 기업의 탐욕을 비판하는 노동자나 시민단체의 소리처럼 들린다. 놀랍게도 이 말의 주인공은 기업인이다.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이 어제 글로벌 사회적 책임(CSR) 컨퍼런스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또 "사회공헌을 바탕으로 가치의 균형을 이루는 성장만이 (경쟁을 통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인의 입에서 이 같은 말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기업의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는 징표다.
지난 2000년 창설된 UNGC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통해 환경, 부패, 인권, 노동 등 세계화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풀어가자는 게 목표다. 2007년 UNGC 한국협회가 세워졌지만 성과는 미약하다.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한국 대기업이 적지 않고, 많은 한국산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공헌도는 이에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 한국을 찾았던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지분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안철수 서울대 교수도 "기업은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소수의 목소리로 울림이 약하다.
한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의식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됐다. 전상경 한양대 교수는 어제 한 심포지엄에서 "비금융 상장사 1700여개 중 지난해 기부금을 한 푼도 안 낸 회사가 366개사, 100만원 이하인 곳은 471개사에 달한다"고 밝혔다. 성공한 기업이라 불리는 상장사가 이런 정도다. '기업의 가치'니 '기업 생태계의 변화'니 하는 말이 사치스럽게 들리는 것이 한국적 기업의 현실이다.
시장은 갈수록 글로벌화하고 기업의 힘은 날로 커진다. 환경이나 인권 문제 등에서 차지하는 기업의 비중과 책임도 막중해졌다. 월가의 시위, 반기업정서의 근원지가 어디인가. 기업이 생존하고 나아가 지속성장하려면 '사회적 책임은 시대적 책무'라는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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