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다음 달부터 전기요금을 평균 10% 인상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그동안 전기요금은 정부가 먼저 인상폭을 결정한 뒤 한전 이사회가 이를 형식적으로 의결하는 행태를 취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전 이사회가 먼저 인상안을 의결해 정부에 제출한 것이다.
한전의 이번 행동은 지난 8월 김쌍수 전 한전 사장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고려한 조치로 해석된다. 소액주주들은 한전이 최근 3년간 전기요금을 원가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받아 회사가 2조80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김 전 사장의 배상책임을 물었다. 그래도 이번 결정이 정부가 임명하는 사외이사 주도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지식경제부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요금 인상안 결정의 이유로 겨울철 전력수급 안정과 영업적자 해소를 내세운다. 지난해 영업적자가 1조8000억원, 누적부채는 33조4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럼에도 현재 전기요금의 원가보상률은 90.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기요금 탓만 해선 안 된다. 한전으로선 경영합리화 등 경비 절감 노력을 더해야 마땅하다.
한전 이사회의 결정이 없더라도 우리는 지금 전기요금 인상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라고 본다. 올겨울 예비전력이 53만㎾(예비율 1%)로 전국 동시정전 사태마저 우려되는 상황에서 지난 10일 정부가 발표한 10% 전력사용 감축 등 수요억제책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전의 인상안이 요금체계의 불균형을 감안해 주택과 농사용은 동결하고, 산업용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차등 인상하기로 한 방향은 맞다.
물가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검토해 적절한 수준으로 전기요금을 올려 전력 과소비를 억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원가보상률이 89%로 주택용(94%)보다 낮은 산업용 요금을 먼저 올려야 한다. 원가조차 받지 않는 대기업 특혜는 거둘 때가 되었다. 그래야 에너지 다소비 행태와 설비를 바꾸고 산업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면 전력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절전 호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기의 가격 기능을 되살려 사용자들이 씀씀이를 줄이도록 해야 한다. 이 겨울에 전력대란으로 벌벌 떨기보다는 합리적인 요금 현실화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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