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수능시험 날 발표된 정부의 '전력수급 안정 및 범국민 에너지 절약대책'은 꼴찌 9등급이다. 기본 바탕인 현실 파악부터 되지 않아서다.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전력 피크 시간대에 절전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보고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그게 언제냐"고 물었다. 장관도, 지경부도, 청와대 지식경제비서관실도 답변하지 못했다. 소비자단체장이 오전 10~12시, 오후 5~7시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이 왜 그때가 피크냐고 묻자 다시 침묵했다. 전력 피크가 언제인지, 왜 피크인지 분석도 하지 않은 대책이 현실성이 있겠느냐고 대통령이 질타했다.
이런 현실 인식에서 나온 대책은 전기를 못 쓰게 하는 규제 일색이다. 전력 다소비 산업체 10% 의무감축을 필두로 대형 빌딩 난방온도(20도) 제한, 네온시간 조명 제한, 지하철 운행간격 조정, 민방위날 절전훈련 등으로 어기면 50만~3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한다. 올겨울 예비전력이 53만㎾(예비율 1%)로 전국 동시정전 사태마저 우려되는 상황에서 강제절전을 통해 400만㎾의 예비전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1만4000여 산업체에 일률적으로 전력 사용을 10% 줄이라는 요구는 불합리하다. 산업용 전력은 단순 소비가 아닌 생산과 직결되는 것으로 그만큼 설비 가동을 멈추라는 의미다. 전력 사용을 줄여 수백억 대 피해를 보느니 300만원 과태료를 내는 게 낫다는 반응도 나온다. 산업 특성에 맞게 감축 비율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업종ㆍ요일ㆍ시간별 피크타임을 조사해 마련한 맞춤형 절약대책으로 위기를 넘겼다.
전력대책의 기본은 발전소를 지어 공급을 확대하거나 가격 기능을 살려 수요를 조절하는 것이다. 연중 전력 피크가 냉방기를 돌리는 여름이 아닌 겨울철에 몰리는 현상은 2009년부터다. 상가ㆍ사무실ㆍ가정에서 석유보다 싼 전기 난방기를 많이 쓰는 탓이다. 강제절전은 임시방편이다. 단속이나 과태료 부과보다 현실을 잘 이해시켜 자발적인 절전을 이끌어야 한다. 아울러 물가 부담을 최소화하는 적절한 시기를 잡아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9ㆍ15 전력대란으로 그렇게 혼쭐이 나고도 대통령에게 질책을 받는 수준의 대책을 내놓은 지경부의 안일함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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