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발행시장 참여위해 경쟁...당국 실태조사
[아시아경제 정재우 기자] 지난달 28일 발행된 2400억원 규모의 서울메트로 회사채 낙찰금리는 4.05%. 하지만 이를 인수한 11개 증권사들의 매출금리(증권사들이 기관투자자들에게 다시 넘기는 금리)는 4.05~4.14% 수준이었다.
수수료가 0.2%포인트, 만기가 3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일부 증권사는 원가(4.11%)보다 헐값에 팔아 손해를 봤다는 의미다. 한 채권평가사 관계자는 “전체의 30% 이상이 (본전 또는 손실을 보게되는) 4.11~4.14%의 금리로 낙찰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증권사가 발행시장에서 비싼 값(저금리)에 회사채를 인수한 뒤 자신의 수수료 수입까지 포기해가며 헐값(고금리)에 되파는 이른바 ‘수수료 녹이기’ 관행이 여전하다.
증권사들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회사채 발행시장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한다. 실적을 쌓아놔야 다른 인수전에도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서비스의 질보다는 가격으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저가 출혈경쟁이 낳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 원가도 못 건지는 사업이다보니 발행사의 기업가치와 위험을 분석하고 실사하는 주관사 본연의 역할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 경우 불량 회사채 유통으로 인한 대규모 투자자 손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구조적인 잠재위험이 있다보니 시장은 자연스레 우량등급 회사채로만 쏠리는 현상을 초래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자금 조달이 제한되고, 투자자들은 양질의 고금리 채권 투자기회를 잃게 된다.
한 증권사 채권담당 임원은 “서울메트로 회사채의 경우 전부다 수수료를 녹였다고 볼 수 없지만 손해를 보고 판 곳도 있다는 게 문제”라면서 “4.14%에 회사채를 인수한 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중에 어떤 기관이 제값에 회사채를 인수하려 하겠나. 상대적으로 비싼 4.05%에 서울메트로 회사채를 인수한 기관 담당자는 무능하다고 찍히게 됐다”고 개탄했다. 한 두 증권사의 출혈경쟁만으로도 시장 전체가 혼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자 조사단을 꾸려 내년 4월까지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회사채 인수업무 전반에 대한 최근 2~3년치의 자료를 받아 검토한 뒤 실태점검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재우 기자 j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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