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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손미라|“우리 얘기 들어보렴” 산들이 전하는 童話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12초

서양화가 손미라 ‘내 마음의 풍경’ 연작

서양화가 손미라|“우리 얘기 들어보렴” 산들이 전하는 童話 내 마음의 풍경 80×80cm Mixed media on canvas,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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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은 단순하면서도 선명히 압축된 겹겹 산(山)임에도 깊은 인식세계를 열어놓고 있다. 아마도 새가 날고 오솔길을 걷고 꽃피지 않았더라면 필경 해원하지 못했으리라!

그날 아침은 엄숙함이 감돌았다. 잔추(殘秋)의 아쉬움에 유랑처럼 서성이던 배들은 때 이른 싸락눈에 잠을 깼다. 자욱한 물안개 사이 생명의 젖줄은 싱그럽고도 온화한 냉기를 뿜어댔다. 누군가 꽃잎 속에 정성스레 촛불을 올려놓은 소망…. 코발트 빛 아침햇살이 꽃물결 향연에 찬란히 쏟아졌다. 그때, 이방인이 낯선 길을 떠나고 있었다.


깨알 같은 섬 하나 그대 마음 속 행복입니까
개울가 쑥부쟁이를 지나니 바람결엔 진한 감국(甘菊)향이 절정이었다. 바다 빛깔을 산에 풀어놓았나, 남청색 칼잎용담 꽃이 친절히 길을 일러준다. 불현 듯 젊은 날 단숨에 써내려 간 하얀 종이 위 애절한 로망스가 나풀거리듯 아득히 사라져가는 것이 보였다.

서양화가 손미라|“우리 얘기 들어보렴” 산들이 전하는 童話 내 마음의 풍경 80×80cm Mixed media on canvas, 2010 .


달빛이 수줍게 드리운 초저녁. 담갈색 회상(回想)이 잦아든다. 그러면 달맞이꽃은 점점 선연히 진노랑으로 물들고 우아하던 노란 꽃밥은 저도 모르게 외로운 몸짓을 그만 잔바람에 들키고 말았다. “한 아이가 돌을 던져놓고/돌이 채 강에 닿기도 전에/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던/돌 같던 첫사랑도 저리했으리”<이홍섭 詩, 달맞이 꽃>


새는 늘 함께했다. 가족을 이루고 사랑을 나누며 영역을 지키는 판타지아는 맑은 목청의 암수가 빚은 낭만의 악곡이었다. 그런 어느 날, 상수리나무 숲 속 어미 새가 홀로 새끼들을 세상 밖으로 보내고 있었다. 둥지서 난생처음 허공에 몸을 던져 두려움에 떠는 새끼 옆을 어미는 스스로 날개를 펴게 바짝 붙어 비행(飛行)했다.


서양화가 손미라|“우리 얘기 들어보렴” 산들이 전하는 童話 내 마음의 풍경 1m×1m Mixed media on canvas, 2010.


그러길 몇 차례. 땀으로 범벅이 된 새는 탕자(蕩子)가 되어 찬 서리 내리는 저 봉오리 넘어 돌아올 것만 같아 휫휫 아빠 새를 향한 비애감 젖은 애련(愛戀)의 노래를, 어찌 부조리하다할 것인가!


세모꼴이며 귀퉁이 닳은 몽돌처럼 구불구불한 산에 가을이 찾아들면 뒷산은 겨울 오고 또 그 뒤엔 새봄 신록이 솟았다. “저 산 너머 또 너머 저 멀리/모두들 행복이 있다 말하기에/남을 따라 나 또한 찾아갔건만/눈물만 머금고 되돌아 왔네.”<칼 부세(Karl Busse) 詩, 저 산 너머에>


스스로 시간의 궤적을 따라 순리의 옷으로 바꿔 입는 산 뒤의 산. 이른바 산은, 말이 없고 울림은 컸다. 어느 누가 세모 산에 꽃이 피고 우람한 산등성엔 무지개가 뜬다 했는가. 편견은 가없고 순환은 흘러 빈 산, 마음일진데. 그런 저 산 너머 또 그 너머 일망무제(一望無際) 깨알 같은 섬 하나. 혹여 오늘 그대 마음 속 행복풍경은 아니십니까?


이코노믹 리뷰 권동철 기자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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