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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피(蛇血)를 마시며 쌓은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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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重 수주전 뒷 이야기 - ②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1994년 해양부문의 새 시장 개척을 위해 베트남으로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베트남은 막 공산주의의 잠에서 깨어나 정부 주도의 도이모이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해양 부문의 신시장으로 떠오른 이곳에 한국의 조선 3사를 비롯해 유럽, 미국의 해양 관련 회사들이 굶주린 늑대처럼 달러들고 있었다.


개방을 표방한 베트남 국영석유회사가 처음으로 해외발주한 가스압축설비(CCP Platform). 이 프로젝트 입찰 경쟁에는 원청 수주의 원년을 만들자는 목표아래 의욕을 갖고 참여한 우리를 비롯해 한국의 유명 조선업체들이 대거 참여해 가히 해양관련 업체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이 때는 우리 회사가 수주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고, 수주목표 9000만달러를 단번에 초과달성할 수 있는 1억5000만달러의 초대형 프로젝트였으므로 영업 담당자였던 나는 입찰 초기부터 아예 베트남에 뿌리를 박고 공격적인 영업활동을 전개했다.

1995년 1월 4일. 새해를 맞이하자마자 하노이로 날아가서 공식미팅에 참석하고, 발주처 관련 인사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한사람 한사람 찾아다니며 친삼성 인맥을 형성하느라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녔다. 이렇게 몇 달을 보내고 나니 많은 사람들은 “삼성은 텔레비전이나 만드는 회사인줄 알았는데 해양사업도 하느냐”며 우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갖게 됐다.


그해 2월말이 첫 아이의 돌이었지만 당시 현지에서의 내 활동 스케줄에는 단 하루의 휴가를 낼 틈이 없었다. 어느덧 수 차례의 입찰이 진행돼 한국 3사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베트남 체류 100일째를 맞던 날, 발주처 내부의 유력인사와 저녁식사 약속을 하게 됐다.


주소만 달랑 던져주고 찾아오라고 해서 택시를 잡아타고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골목길을 수없이 헤맨 끝에 다 기울어져 가는 한 낡은 현지식당에 당도할 수 있었다. 외관부터가 어째 심상치않다 싶더니 안내를 받아 들어선 입구에 살아있는 뱀이며, 거북이, 개구리들을 잔뜩 진열해두고 있는 모습이 아프리카 정글 속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이것은 서곡에 불과했다.


한참 만에 나타난 3명의 발주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식사가 시작됐는데, 그들 중 좌장격인 사람이 의미 있는 미소를 내 쪽으로 던지면서 삼국지의 도원결의를 운운하며 “신뢰있는 비즈니스를 하려면 피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뜻인가 하여 긴장하고 있는데 팔뚝만한 살모사 한 마리가 테이블로 올라왔고 좌장이 직접 목을 따서 피를 받는 것이 아닌가.


아~나는 그날 드라큐라처럼 뱀피를 마시며 그들과 형제가 되지 않으면 안됐다. 그후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풀려나갔으며, 곧이어 본사에서 출장 온 영업부장 일행이 한 차례 더 그들과 형재애를 과시한 후로 수주를 낙관할 수 있게 됐다.


그때 우리 일행중 한 사람이 뱀피를 마시고 밤새 복통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수주 성사라는 값진 결실을 생각하면 모든게 그리운 추억이다. 계약 직전 한국의 경쟁사 사장이 갑작스레 발주처를 방문, 가격 인하조건을 내세우는 바람에 재협상을 벌이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결국 우리가 계약서에 서명을 하게 됐다. 통상 출장 기간 150일을 암긴 1995년 7월 15일의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수주 당시 여러 환경이 좋지 않아서 이익을 내지는 못했지만, 수주 후 설계, 생산, PM 등 모두가 한 뜻으로 힘을 합쳐 최단기 일정으로 공사를 마무리 했다. 가스 관련 첫 원정 수주였던 이 CCP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인도를 통해 삼성중공업은 세계 해양시장에서 선진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 내의 매스컴들이 첫 해외 발주 공사의 수행업체로 대대적인 홍보를 해 삼성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고, 이를 계기로 삼성엔지니어링, 삼성물산 등이 대형 후속 공사를 수주하게 됐다. 조창동 부장(조선해양 런던지점)




채명석 기자 oricm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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