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뱀피(蛇血)를 마시며 쌓은 신뢰

시계아이콘01분 46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삼성重 수주전 뒷 이야기 - ②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1994년 해양부문의 새 시장 개척을 위해 베트남으로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베트남은 막 공산주의의 잠에서 깨어나 정부 주도의 도이모이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해양 부문의 신시장으로 떠오른 이곳에 한국의 조선 3사를 비롯해 유럽, 미국의 해양 관련 회사들이 굶주린 늑대처럼 달러들고 있었다.


개방을 표방한 베트남 국영석유회사가 처음으로 해외발주한 가스압축설비(CCP Platform). 이 프로젝트 입찰 경쟁에는 원청 수주의 원년을 만들자는 목표아래 의욕을 갖고 참여한 우리를 비롯해 한국의 유명 조선업체들이 대거 참여해 가히 해양관련 업체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이 때는 우리 회사가 수주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고, 수주목표 9000만달러를 단번에 초과달성할 수 있는 1억5000만달러의 초대형 프로젝트였으므로 영업 담당자였던 나는 입찰 초기부터 아예 베트남에 뿌리를 박고 공격적인 영업활동을 전개했다.

1995년 1월 4일. 새해를 맞이하자마자 하노이로 날아가서 공식미팅에 참석하고, 발주처 관련 인사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한사람 한사람 찾아다니며 친삼성 인맥을 형성하느라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녔다. 이렇게 몇 달을 보내고 나니 많은 사람들은 “삼성은 텔레비전이나 만드는 회사인줄 알았는데 해양사업도 하느냐”며 우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갖게 됐다.


그해 2월말이 첫 아이의 돌이었지만 당시 현지에서의 내 활동 스케줄에는 단 하루의 휴가를 낼 틈이 없었다. 어느덧 수 차례의 입찰이 진행돼 한국 3사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베트남 체류 100일째를 맞던 날, 발주처 내부의 유력인사와 저녁식사 약속을 하게 됐다.


주소만 달랑 던져주고 찾아오라고 해서 택시를 잡아타고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골목길을 수없이 헤맨 끝에 다 기울어져 가는 한 낡은 현지식당에 당도할 수 있었다. 외관부터가 어째 심상치않다 싶더니 안내를 받아 들어선 입구에 살아있는 뱀이며, 거북이, 개구리들을 잔뜩 진열해두고 있는 모습이 아프리카 정글 속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이것은 서곡에 불과했다.


한참 만에 나타난 3명의 발주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식사가 시작됐는데, 그들 중 좌장격인 사람이 의미 있는 미소를 내 쪽으로 던지면서 삼국지의 도원결의를 운운하며 “신뢰있는 비즈니스를 하려면 피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뜻인가 하여 긴장하고 있는데 팔뚝만한 살모사 한 마리가 테이블로 올라왔고 좌장이 직접 목을 따서 피를 받는 것이 아닌가.


아~나는 그날 드라큐라처럼 뱀피를 마시며 그들과 형제가 되지 않으면 안됐다. 그후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풀려나갔으며, 곧이어 본사에서 출장 온 영업부장 일행이 한 차례 더 그들과 형재애를 과시한 후로 수주를 낙관할 수 있게 됐다.


그때 우리 일행중 한 사람이 뱀피를 마시고 밤새 복통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수주 성사라는 값진 결실을 생각하면 모든게 그리운 추억이다. 계약 직전 한국의 경쟁사 사장이 갑작스레 발주처를 방문, 가격 인하조건을 내세우는 바람에 재협상을 벌이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결국 우리가 계약서에 서명을 하게 됐다. 통상 출장 기간 150일을 암긴 1995년 7월 15일의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수주 당시 여러 환경이 좋지 않아서 이익을 내지는 못했지만, 수주 후 설계, 생산, PM 등 모두가 한 뜻으로 힘을 합쳐 최단기 일정으로 공사를 마무리 했다. 가스 관련 첫 원정 수주였던 이 CCP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인도를 통해 삼성중공업은 세계 해양시장에서 선진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 내의 매스컴들이 첫 해외 발주 공사의 수행업체로 대대적인 홍보를 해 삼성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고, 이를 계기로 삼성엔지니어링, 삼성물산 등이 대형 후속 공사를 수주하게 됐다. 조창동 부장(조선해양 런던지점)




채명석 기자 oricm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