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박문 '100년 대출' 책, 있는 줄도 몰랐다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100년 만의 반납'인데 국민들은 무관심하다. 이토 히로부미가 훔쳐 간 책이 100년만에 돌아 오는 날을 사흘 앞둔 15일. 그동안 '조선왕실의궤'와 '이토 대출 도서' 등의 환수 운동에 나서온 '문화재 제자리 찾기' 사무총장 혜문(사진) 스님을 만나 그 의미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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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18일 들고 오는 '한일도서협정' 반환 도서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건 '홍재전서(弘齋全書)' 2책이다. 정조의 시문(詩文)과 교지(敎旨) 등을 엮은 문집인 이 책은 100년 전 이토가 서울대 규장각에서 빌린 뒤 아직까지 반납하지 않은 책 66종 938책의 일부다.
이 책들은 이토가 1909년 통감직을 그만두면서 일본으로 가져가는 바람에 이토 사후 일본 궁내청에 남게 됐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이토 대출 도서'와 함께 돌아오는 '조선왕실의궤'에만 쏠린다.
'이토 대출 도서'는 환수 과정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조선왕실의궤'에 묻혀 있다. 국외 문화재 환수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은 이렇듯 현재 진행형이다.
혜문 스님은 이날 "'한일도서협정'으로 돌아오는 책 목록에 '이토 대출 도서'가 포함됐다는 걸 알았을 때 조금 뜻밖 이었다"며 "다들 '조선왕실의궤'에만 주목하다보면, 이 '이토 대출 도서'가 갖는 의미가 이대로 그냥 사라져버릴까 두렵다"고 말했다. 수 년의 노력 끝에 돌아오는 '조선왕실의궤'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지만, '이토 대출 도서'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혜문 스님의 지적에 따르면, '무신사적(戊申事績)', '기재잡기(奇齋雜記)' 등을 비롯한 '이토 대출 도서' 66종 938책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건 철저히 일본 정부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8월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가 경술국치 100년 담화에서 "조선총독부의 기증으로 일본에 건너 온 조선왕실의궤 등 도서를 한국으로 인도하겠다"고 밝힌 게 그 시작이었다. 간 전 총리가 직접 이야기 한 건 '조선왕실의궤'뿐이었지만, 지난해 말 공개된 반환 도서 목록엔 '이토 대출 도서'가 포함돼 있었다.
혜문 스님이 이와 관련해 뜻밖이라는 입장을 밝힌 건 반환 도서 목록 결정이 오롯이 일본 정부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간 전 총리 담화 뒤에도 반환 도서 목록에 대한 한국 정부의 아무런 요청이 없자 일본이 되레 더 당황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일본은 결국 '자발적'으로 반환 도서 목록 선정에 나섰다. 그 결과 '이토 대출 도서' 66종 938책, '조선왕실 의궤' 81종 167책, '증보문헌 비고' 2종 99책, '대전회통' 1종 1책 등 일본 궁내청 소장 도서들로 목록이 꾸려졌다.
이 목록은 간 전 총리가 말한 '총독부 경유 반출 도서'가 아니라 '나중에라도 일본 왕실에 폐를 끼칠 수 있는 도서'를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혜문 스님은 "'이토 대출 도서' 반환은 민간 단체 등의 노력도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의 셈법 때문에 돌아오게 된 것"이라며 "'이토 대출 도서' 반환을 계기로 정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국외 문화재 환수에 얼마나 무관심했었는지를 다시 한 번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다 일본 총리가 들고 오는 '이토 대출 도서'를 비롯해 올 12월10일 전으로 돌아오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일도서협정' 반환 도서 1205책은 일단 국립고궁박물관으로 갔다가, 향후 논의를 거쳐 소장처를 정할 예정이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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