뤽 베송 마스터 클래스
1994년 <레옹>으로 세계 관객들에게 이름을 알렸던 프랑스 미남은 어느덧 풍채 좋은 중년이 되어있었다. 뤽 베송 감독이 제 16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의 갈라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소개한 영화는 양자경 주연의 <더 레이디>. “시나리오를 읽고 아기처럼 울었다. 그리고 꼭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 영화는 버마 민주화 운동을 이끈 아웅산 수치 여사의 강인한 투쟁기와 남편과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다. 뤽 베송은 올해 BIFF를 위해 신작 외에도 영화학도를 위한 수업까지 준비했다. 가장 쉬운 언어로 말할 것. 구체적인 예시를 보여줄 것. 그리고 예의 있는 거짓보다 솔직한 진심으로 다가갈 것. 뤽 베송의 마스터 클래스는 진정 좋은 교사의 조건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었다. 마치 ‘눈높이 선생님’처럼 학생들의 다양한 수준과 관심사에 맞추어 최선의 답변을 전한 뤽 베송은 “프랑스에 영화학교를 만들고 싶은데 별로 원하는 사람이 없다”며 엄살을 떨었지만 그와의 두 시간은 고루한 이론보다 ‘실학 운동’의 에너지로 끓어오르는 충분히 매력적인 시범수업 이었다. 영화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뤽 베송의 ‘영화 생활의 지혜’ 몇 가지를 옮긴다.
“평론가와 감독? 그냥 모든 사람들이 자기 직업에 따라 일 할 뿐이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그들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쓰는 사람이다. 전혀 다른 직업이다. 나는 그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 만약 당신의 영화가 언젠가, 어디선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당신은 승리자다. 여기 있는 누군가가 <레옹> 때문에 영화감독을 꿈꾸고, 프로듀서를 꿈꾸게 되었다고 했다. 저기 앉은 남자의 열두 살 아들이 내 영화가 멋지다고 했다. 이것이 영화작업의 아름다움이고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시기, 어느 지역에서 내려진 평가는 그 시기, 그 지역을 떠나면 의미가 없어진다. 예를 들어 내 영화 <그랑블루>가 칸 국제영화제에 처음 소개 되었을 때 모든 평론가들이 그 영화를 거의 아니 100% 죽여 놓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당시 평단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나도 잊었다.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그러니 평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 당신들의 친구는 평론가가 아니라 관객들이다.”
“어느 7월, 40도에 가까운 매우 더운 날.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를 만났다. 2미터 정도 되는 큰 키에 검은 선글라스, 여름에 입기엔 너무나 크고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었다. 뭐하는 사람이지? 그래서 무작정 그를 따라갔다. 어떤 빌딩으로 들어가는 그를 계속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다가 그 남자의 직업과 정체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 남자가 바로 레옹의 모델이 된 거다. 영화를 만드는 것의 영감은 예술작품이 아니라 그렇게 당신의 삶에, 주변에 늘 있다. 피부와 눈 그리고 귀, 모든 감각기관을 열어라.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10분 동안 당신 앞에 지나가는 모든 것을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것이다. 대신 다른 이가 만든 영화로부터 영감을 얻지 말아라. 그건 가장 나쁜 거다. 다른 이가 만든 영화는 이미 그 사람이 느낀 것들의 축약판일 뿐이다.”
“젊은 때만 열정적인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나는 영화 만들기가 사랑과 같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열정적이지만 나이가 들면 사랑에 대한 지식이 많아져서 나쁜 사랑을 하게 되나? 그렇지 않다. 그건 그냥 다른 거다. 사랑에 대한 관점이, 영화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는 것뿐이다. 첫 영화를 찍었을 때가 19살이었는데 인생에 대해 뭘 알았겠나. 아무것도 몰랐다. 그 때 내가 아는 것에 대해 만들었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되었다. 아마 예전보다는 인생에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냥 나이에 걸맞게 만들면 되는 거다. 내가 <서브웨이>를 만들었을 때 모든 평론가들이 ‘정말 젊은 영화’라고 했다. 당연하지. 나는 그때 21살이었으니까. (웃음)”
“지금 당신들은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다. 언제라도 어렵지 않게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있으니까. 그리고 편집을 할 수 있는 컴퓨터만 있으면 영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 내가 열여섯에 ‘슈퍼8’을 들고 처음 영화를 찍었을 때 3분짜리 무성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름을 사려고 몇 주간 잔디를 깎아야 했다. 완성된 필름을 봉투에 넣어 코닥에 보내고 그것이 현상되어 돌아오기까지 6주를 기다렸다. 3분짜리 단편을 위한 정말 긴 시간이 필요했던 시대였다. 지금은 그런 과정이 필요 없다. 외국의 좋은 영화학교를 갈 필요도,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취직할 필요도 없다. 지금 당신 손에 혹은 당신의 친구에게 카메라가 있다면 그냥 나가라. 그리고 찍어라. 편집해라. 음악을 넣어라. 그것이 영화를 배우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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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부산=백은하
10 아시아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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