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임기가 종반에 가까워지면 으레 나타나는 몇 가지 증후가 있다. 청와대는 '레임덕은 없다'고 말한다. 정부는 공직자 기강 확립을 강조하고 사정기관은 정의의 칼을 벼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공직사회의 뒤쪽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은 딴판이다. 힘이 있을 때, 끈이 튼튼할 때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한 막바지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능력 있는 사람이 쫓겨나기도 하고, 엉뚱한 인물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정권 후반부에 특히 기승을 부리는 자리 다툼과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 그들을 위한 자리 만들기는 국민에게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자 공직사회 특유의 '임기 말 증후군'이다. 공정과 동반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이 같은 고질병이 고쳐지기는커녕 증세가 한층 깊어지는 양상이다.
비록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이 있다면 국민들의 상심을 조금은 덜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기대마저도 사치인 듯싶다. 전문성은 물론 객관적 평가까지 팽개친 인사가 다반사로 이뤄진다. 얼마 전에는 기관장 평가에서 최하위 D등급을 받은 공기업 사장이 11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연임에 성공했다. 이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본부장을 지낸 사람이다. 지식경제부 산하 남부ㆍ동서ㆍ남동발전 사장 인사에서는 경영평가에서 1위를 한 사장이 물러나고 그보다 낮은 평가를 받은 두 사람이 연임되는 이변을 낳았다. "공기업 사장은 단임이 원칙"이라는 최중경 지경부 장관의 말도 공수표가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낙하산 비난에 은행 감사에서 물러났던 인물이 석 달 만에 다른 공기업 감사로 임명되는가 하면 퇴임한 지 10년이 넘은 소위 '모피아 올드보이'들이 공기업체 수장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청와대나 기획재정부 등에서 뒤를 봐주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들린다.
설립목적이 아리송한 '위원회'도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노무현 정권을 '위원회 공화국'이라 비판했던 이명박 정부다. 그런데 정권 출범 후 위원회는 68개가 늘어났다. 회의도 제대로 열지 않는 유명무실한 위원회가 상당수다. 무원칙한 인사로 짜인 공기업과 공공기관, 위원회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기강이 서겠는가. 레임덕은 이런 인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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