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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 '창의성 열풍' 좀 쉬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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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 '창의성 열풍' 좀 쉬어가자 임 웅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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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이란 단어는 이제 우리사회의 중요한 아이콘이 됐다. 물론 한 시대의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그 세력이 쉽게 약해질 것 같지는 않다. 창의성은 포기하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혹은 아인슈타인이 될 수만 있다면 이는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만약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내가 누리게 될 부와 명예는 굳이 상상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창의성이란 단어는 우리 사회의 모든 기업과 학교, 그리고 가정에까지 아무런 제재 없이 무혈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창의적 리더십이라든가 창의적 조직관리 등 기업의 교육과정에는 습관적으로 '창의'라는 접두어가 포함되어 있고, 거의 모든 학교의 교육목표가 창의와 인성으로 귀결되는 현실은 우리사회의 창의성에 대한 열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할 것이다.

창의성을 연구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이런 창의성 열풍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러 학문 분야 중에서 이처럼 각광받는 학문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하고 감사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그런 다행과 감사의 마음만큼이나 불편한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현재 유통되고 있는 창의성에 대한 지식이 우리 사회가 재촉하는 창의성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한가에 대한 자신은 없다. 우리 사회에서 거침없이 확대되는 창의성에 대한 증폭된 관심의 근거는 세상을 변화시킬 위대한 '발명과 발견'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창의에 대한 담론은 정확한 이론과 실증적 데이터에 기대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대답이다. 물론 창의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정확한 이론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으나 그런 실제적인 적용도 어느 정도의 이론적 논의가 기반이 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막연한 상식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창의성이 발현되는 데 다양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나를 보고 하나만 생각하는 것보다는 하나를 보았을 때 열 가지를 생각하는 것이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논리다. 이런 믿음을 근거로 창의성 교육에는 다양한 사고, 즉 확산적 사고를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과정이 포함된다. 그렇지만 정말 그럴까? DNA의 구조가 2중 나선임을 밝혔던 왓슨과 클릭의 창의성은 2중이나 3중 혹은 4중, 아니라면 5중 등등 다양한 모델을 가정했기 때문에 발현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왓슨과 클릭은 처음부터 2중 나선 한 가지 가능성만을 가정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러한 가정은 철저하게 그들의 선행지식에 근거한 확신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창의성을 발현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사고를 촉진하는 것은 어쩌면 의미 없는 시간낭비일지도 모른다.


관심의 크기는 결과에 대한 기대의 크기와 비례한다. 양적으로 증폭되는 창의성에 대한 관심은 창의성이 가져올 결과가 그만큼 가치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한 구호나 정치적 선전이 아니라 진정으로 창의성의 가치를 공유하고 그 가치의 실현을 원한다면, 이제는 잠깐 숨 고르기를 해야 할 시점이다. 그저 모든 곳에 창의라는 단어를 끼워 넣는 것만으로, 그래서 우리 모두가 창의를 외치는 것만으로 창의성이 발현될 것이라는 믿음은 지나치게 소박한 가정일 뿐이다. 잠깐 숨을 고르고 우리가 지나온 길과 지금 서 있는 곳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곳에 대해 정밀하게 진단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 잠깐의 숨 고르기,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창의적인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인지도 모른다.


임 웅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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