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연합(EU) 국가를 중심으로 수요기반 혁신정책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존의 혁신정책이 산ㆍ학ㆍ연ㆍ관이 중심이 된, 연구개발(R&D) 자금지원, 인력육성 위주의 기술공급 및 요소자원 투입 정책에 대한 반성으로 볼 수 있다. 스마트폰 혁명을 일으킨 아이폰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기술의 창조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술 주도에서 벗어나 인문사회 중심의 새로운 사회적 견인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기술을 활용할 상상력의 제고와 함께 사용자, 소비자, 일반 국민 등 다양한 사회 주체의 수요 대응 및 만족도 제고가 새로운 정책 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수요기반 혁신정책(DBIP)은 새로운 혁신의 출현ㆍ확산을 위한 수요를 촉진하고, 시장의 확산ㆍ성장을 위한 수요의 구체성을 높이는 일련의 정책이다. 기존의 기술공급 정책과는 상호배타적이라기보다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EU는 공공부문의 구매력을 활용한 혁신 촉진을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16%를 투자하고 있으며 자동차, 재생가능에너지, 대체물질, 친환경제품에서의 규제를 통해 에너지 효율적, 환경 친화적 제품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구축했다.
반면 핀란드는 통합적 혁신정책을 국가혁신전략으로 제시하고 수요기반 혁신정책과 사용자 주도형 혁신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핀란드는 기후변화, 지속가능한 소비, 청정 공기와 물, 교통, 보건과 복지, 안전과 안보 등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구매, 규제, 표준화, 권고ㆍ표시제, 정부ㆍ민간 협력 등의 수요기반 혁신정책 수단을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특히 핀란드 국가혁신지원기관인 TEKES는 공공구매, 규제, 표준화 등의 수단을 활용하여 수요 및 사용자 기반 혁신을 촉진하고 있다.
가장 성공적인 예로는 에너지 효율 기술의 생산ㆍ개선ㆍ확산을 위한 스웨덴의 수요 기반 혁신정책 시도를 들 수 있다. 스웨덴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서 환경오염 물질을 줄이는 제품에 대한 일반 경쟁방식으로 공공기술 구매를 진행하여 사회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기술혁신 활동을 촉진시키는 성과를 달성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의 재빠른 기술 모방에서 벗어나 그 기술이 개발ㆍ활용되는 시장과 제도를 함께 창출해야 하는 탈추격(Post Catch-up) 혁신 상황에 있다. 과거 추격 시기에는 이미 있는 기술이나 제품을 값싸게 생산하여 판매해도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방과 추격의 대상이 없는 탈추격 혁신 상황에서는 기술개발을 뛰어넘어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ㆍ확산시켜 나갈 것이며, 사회 수요를 어떻게 새롭게 창출하고 구체화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도 기존 기술공급 중심의 혁신정책에 대한 반성과 인식 전환이 필요하며, 수요 기반 혁신정책을 새로운 정책 의제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수요가 무엇이며, 이러한 수요 충족을 위해 기술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다양한 수요를 어떻게 구체화하여 새로운 시장 창출 및 확산으로 연계시킬 것인지 수요에 기반을 둔 정책이 강조되고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기술공급정책과 수요기반 혁신정책이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하도록 목표 및 수단 차원에서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다양한 사회적 수요를 반영하고 구체화할 수 있도록 정책 기획 과정을 개방화하고 마케팅, 재무, 인문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참여가 확대돼야 한다.
수요기반 혁신정책이 새로운 정책 의제로 도입되고 기존의 기술공급 정책과 수요기반 혁신 정책이 연계되기 위해서는 각 정책 분야에 통합적 접근이 가능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적극적인 이니셔티브가 중요하다.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원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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