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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묻지마 폭행, 당신은 왜 안말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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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묻지마 폭행, 당신은 왜 안말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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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던 대학생이 이유 없이 하이킥을 당하고, 자리 양보했더니 뺨 맞고, 아이가 귀엽다고 했다가 아이 엄마에게 폭언을 당하고…. 공공장소인 지하철이나 버스 안, 길거리에서의 이른바 '묻지마 폭행'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사건의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그 사람 많은 곳에서 그렇게 봉변을 당할 줄 상상도 못 했다. 다들 모른 체하더라"고 서운해 한다. 물론 안 그런 예도 있다. 과감하게 나선 해결사는 언론과 네티즌들에 의해 '의인'으로 추앙된다. 그만큼 과감한 의인이 많지 않다는 방증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폭행도 문제지만 '약해진 시민의식' '개인주의 무관심' 등 현대사회를 개탄하는 의견도 많다. 말리다 자칫 쌍방과실로 고소당하는 경우도 많으니 제도적 개선부터 필요하다는 좀 더 건설적인 의견도 나온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집단무관심 현상에는 심리적 요인도 있다. 독일 심리학자 링겔만이 집단 속 개인의 공헌도를 측정하기 위해 줄다리기 실험을 했다. 1대1 게임에서 1명이 내는 힘을 100으로 했을 때 2대2 게임에서는 1명이 93, 3대3 게임에서는 85, 8대8 게임에서는 49로 줄었던 것. 즉, 혼자 경기할 때에 비해 8명이 한 팀이 되니 각자 절반밖에 힘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참가하는 사람이 늘수록 1인당 공헌도가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을 링겔만 효과라고 부른다. 인간에게는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나서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또 다른 실험을 했다. 해변에서 한 청년이 음악을 듣고 있다 바닷물로 뛰어든다. 그때 어떤 사람이 녹음기와 청년의 옷가지를 챙겨 슬그머니 달아난다. 20회의 실험 중 누가 봐도 '도둑'으로 보이는 그를 잡으려 한 사람은 단 4명이었다. 다음에는 똑 같은 상황에서 하나를 바꿨다. 청년이 바닷물에 뛰어들기 전 "제 물건 좀 봐주세요"라며 직접 부탁을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20회 중 19명이 도둑을 잡으려고 위험을 무릅썼다.

바로 이것이다. 지하철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의 경우 그 현장에는 하나같이 개인주의자들만이 모여 있어 아무도 안 말렸던 게 아니다. 저 옆에 건장한 청년이 나서겠지, 그 앞의 근엄한 신사분이 한마디 하겠지, 저기서 지켜보고 있는 아줌마가 한소리 하겠지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만약 피해자가 특정인들에게 도움을 부탁하면 아주 위험한 상황이 아닌 한 나서서 도왔을 것이다.


기업 현장도 마찬가지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시너지가 일어난다. 그룹지니어스, 집단지성의 힘이 한 명의 천재보다 낫다. 경영학의 정설들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냥 모여있기만 해서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는 집단 속 개개인의 역할이 명확할 때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다. 각자가 맡은 바가 확실하고, 모두가 그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시너지도 생기고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이 많을수록 숨을 데도 많아지는 법이다.


공공장소에서의 묻지마 폭행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릴 때부터 부당하거나 불의라 판단될 때는 먼저 나서라고 교육시켜야 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담당해야 할 역할로 규정시켜 주는 것이다. 남에게 미룰 것이 아니라 내 일 또는 내 가족의 일로 생각하도록 말이다.
 아이들이 남에게 미루지 않는 사람으로 큰다면 묻지마 폭행과 같은 사건은 줄어들 것이다. 조직 내 부정부패, 비리도 줄어들 것이다. 위정자들의 비양심적인 행위도 줄어들 것이다. 조금만 불의가 보이면 모두가 나서서 바로잡으려 드는 사회,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건강한 시민사회다.




조미나 IGM(세계경영연구원)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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