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15세기 이후 항해무역이 발달하면서 유럽의 문화·예술에서는 동양적 풍취를 좆는 경향이 종종 나타났다. 오리엔탈리즘으로 불리는 이같은 경향은 지금도 유럽과 미국의 패션과 문화에서 중요한 흐름을 차지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스킨케어·생활용품 브랜드체인 ‘리추얼스(Rituals)’의 레이먼 클루스터만 최고경영자(CEO)는 이같은 문화적 경향을 도입해 유럽 시장에서 빠른 성공을 거뒀다.
클루스터만 CEO는 대학 졸업후 곧바로 영국·네덜란드계 종합생활용품·식품그룹 유니레버에 입사해 27세 나이에 세제용품 사업부 책임자를 맡는 등 빠르게 성장했다. 당시 새로 부임한 존 샤프 유니레버 유럽지역대표는 1999년 그를 신사업개발 담당 부사장으로 지명했고 2개월 안에 새로운 콘셉트를 개발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하루에 12번씩 회의를 들어가며 숨가쁘게 살다가 갑자기 전화기만 놓인 책상 앞에 앉았더니 처음에는 정말 막막하기 그지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영감’을 찾기 위해 유럽과 미국을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이 과정이 자신만의 사업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계기가 됐다.
그는 “트렌드 ‘구루(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소·패션 브랜드숍 등을 찾아다녔다”면서 특히 ‘마하리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한다. 힌두교의 정신적 스승의 이름을 딴 ‘마하리시’는 영국 내 패션디자인 브랜드로 독특한 자연소재 의류상품에 힘입어 미국과 일본에도 진출한 곳이다. 클루스터만은 마하리시의 브랜드 철학 등에서 지금 리추얼스에 대한 영감을 찾았다.
2개월 뒤 클루스터만이 내놓은 콘셉트는 스킨케어 등 전통적인 화장·미용용품 매장과 가정용품 매장을 결합시킨다는 것이었다. 소비자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를 유지하면서도 품격있는 브랜드 가치를 제시하고, 마케팅 전략도 단기간 막대한 광고비용을 쏟아붓는 대신 오랫동안 고객들의 충성도를 높여 입소문을 타고 성장한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유니레버같은 글로벌 기업은 이같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엔 너무 덩치가 컸다. 고심 끝에 샤프 대표와 클루스터만은 사업부를 분리해 자회사를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리추얼스’의 시작이었다.
2000년 암스테르담에 첫 매장을 낸 리추얼스는 터키·일본·중국·인도 등 동양적인 문화 콘셉트를 매장 요소로 도입했다. 터키식의 ‘함맘’ 라인에는 바디머드팩과 올리브유 향신료 등을 배치하고 일본식 ‘사쿠라’ 라인에는 벚꽃무늬 의류를, 인도식 ‘아유베다’ 라인에는 히말라야 지방에서 난 세척용 소금을 배치하는 식이다.
처음 5년 동안은 고전했다. 모기업인 유니레버가 새로운 기업전략 도입으로 브랜드와 매장 수를 대폭 감축하면서 관계도 끊기게 됐다. 하지만 독특한 기업 콘셉트로 점차 고객들의 반응을 얻기 시작했고, 현재는 유럽 12개국에서 160개 매장을 거느린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클루스터만 CEO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적자를 딛고 수익성을 내기 시작했지만 ‘바디샵’ 등 전세계에 진출한 체인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서 그는 “진짜 재미있는 것은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김영식 기자 gr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