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삶의 전부인 소년이 있다. 하지만 소녀는 하늘을 보기 위해 소년을 떠나 탑 꼭대기를 향해 오른다. 그리고 소년은 소녀를 찾아 탑을 오른다. 동화와도 같은 이 출발은, 하지만 어느 순간 탑을 오르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는 경쟁과 투쟁의 서사가 된다. 잔머리를 굴리는 녀석들은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준 동료를 버리고, 막강한 힘을 가진 공주는 미션을 통과하기 위해 팀원을 해치운다. SIU 작가의 웹툰 <신의 탑>의 무대인 모든 것이 있는 탑이 이 세상과 닮은 건 그 때문이다. 탑의 맨 위에는 당신이 바라는 것이 있다며 사람들을 끌어 모으지만, 정작 한 층 한 층 올라가서 정상에 설 수 있는 소위 ‘랭커’의 자리는 아주 소수에게만 허락된다. 이 흥미로운 판타지 모험물은 그래서, 잔인하다.
“탑 위에 모든 것을 가져다 놓고 나니까, 반대로 탑 아래에는 그 무엇도 없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저는 탑을 올라가는 각 인물들의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빼앗아 버릴 수밖에 없었어요.” 탑이라는 공간의 성격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험담을 만든 SIU 작가의 변 역시 이 만화의 밑에 깔린 비정한 정서를 드러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바이벌의 구조를 띈 <신의 탑>이 잘 만든 모험담인 건, 그저 등장인물들의 싸움이 치열해서만은 아니다. 탑 안에서 두려움의 존재로 꼽히는 비선별인원인 주인공 밤은 단순히 상식을 벗어난 재능을 가졌을 뿐 아니라, 탑이 강요하는 경쟁과 투쟁의 룰을 부정할 줄 안다. 다시 말해 뺏고 빼앗기는, 혹은 죽고 죽이는 비정한 세계에 대해 올바른 신념을 가진 주인공이 도전할 때 비로소 <신의 탑>은 그저 탑을 오르는 과정이 아닌,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서사로 이어진다. 매혹적인 상상력과 예측하기 어려운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SIU 작가에게 그만큼 중독적인, 작가 스스로를 빠져들게 한 음악들을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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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ortishead의 < Roseland NYC Live >
“유명한 포티쉐드의 라이브 앨범이에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그룹이고, 그들의 모든 앨범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앨범을 가장 좋아해요. 특히 앨범 말미에 나오는 ‘Sour Times’는 언제 들어도 처음 들었던 그 때처럼 소름이 돋아요. 이 앨범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듣기 시작하면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겠죠.” 명료하기보다는 몽환적인 사운드가 매력적인 트립합 밴드 포티쉐드가 단순한 라이브가 아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실험한 앨범이다. 고음역의 탄탄한 목소리라기보다는 오히려 끊어질 듯 불안한 베스 기븐스의 목소리와 제프 베로우의 사운드 메이킹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조차 철저하게 포티쉐드 스타일 안에서 풀어낸다.
2. Shadow Gallery의 < Legacy >
“학창 시절 한창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유행할 때, 저는 개인적으로 남들이 많이 듣는 드림씨어터보다는 쉐도우 갤러리를 좋아했어요. 좀 더 푸근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이 앨범의 백미는 역시 마지막에 나오는 35분짜리 대곡 ‘First Light’라고 생각해요. 눈을 감고 이 곡을 들으면 마치 다른 세상이 와 있는 듯 환상적이죠.” SIU 작가의 말대로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가장 대중적 이름은 드림씨어터다. 그들의 곡 구성이 드라마틱하고 현란하다면, 쉐도우 갤러리는 역시나 복잡한 구성 안에서도 격렬하기보다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사운드를 들려준다. 2집 < Carved In Stone >부터 자신들의 색깔을 확립한 마스터피스를 내기 시작했던 그들의 물 오른 합주와 작곡 능력을 즐길 수 있는 앨범이다.
3. 이상은의 <6집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이상은 씨의 앨범은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가사, 멜로디, 목소리, 어느 하나 과한 게 없어서 참 좋아요. 그런데도 음악이 가벼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참 부럽죠. 저는 가끔 이런 담백하면서도 무게가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은데 아직은 실력이 없어서 그런지 맵고 짠 조미료를 치지 않고는 이야기를 끌고 나갈 자신이 없더라고요. 여러 가지로 존경스러운 아티스트예요.” 이상은에 대한 찬사를 담아 추천하는 곡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새’다. 다분히 동양적인 사운드, 하지만 소위 뉴에이지라 불리는 장르적 한계에 매몰되지 않고 마치 음유시인처럼 가사와 멜로디를 풀어내는 것이 인상적인 앨범이다. 특히 추천곡인 ‘새’에 있어서의 이상은은 대단한 음악 감독이라는 전문가의 평가까지 받았다.
4. Radiohead의 < OK Computer >
록 마니아들에게 이른바 필청 앨범이라는 것이 있다. 너바나의 < Nevermind >가 그렇고, 메탈리카의 < Master Of Puppets >가 그런 것처럼 라디오헤드의 < OK Computer >가 그렇다. “고등학교 때 노래 좀 듣는다며 폼 좀 잡아보려고 테이프로 이 앨범을 샀던 게 기억나요. 처음 들었을 땐 어찌나 재미없고 지루하던지. 그래도 예술인이 되어보자는 알 수 없는 각오 10에 테이프 값은 뽑자는 생각 90으로 꾸역꾸역 듣다가 그만 잠이 들었죠. 그리고 테이프가 몇 번을 돈 후에 스르르 잠에서 깼는데, 눈을 떴는데도 차마 일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노래가 너무 좋아서. 잠은 깼는데 아직 꿈속에 있는 기분이었죠. 그 이후로 이 앨범을 CD로도 사고, 라디오헤드의 다른 앨범들도 모으게 되었어요. 참 신기한 경험이었죠.” SIU 작가가 앨범에서 골라준 곡은 특유의 서정적 우울이 빛나는 ‘Exit Music’이다.
5. Queen의 < A Night At The Opera >
SIU 작가가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곡은 퀸의 명곡 ‘Bohemian Rhapsody’다. “허영만 선생님의 <타짜> 4부, ‘벨제붑의 노래’에 이 노래가 나오죠. 등장인물들의 광기, 타락과 굉장히 잘 어울렸던 노래라고 생각해요. 전체적으로 놓고 봐도 굉장히 이야깃거리가 많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앨범이죠. 개인적으로 ‘벨제붑의 노래’가 영화화되어서 이 음악이 영화음악으로 쓰이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한국 영화 사상 가장 광기어린 장면이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고음역 소화도 고음역 소화지만, 일종의 보컬 연기를 보여주는 프레디 머큐리의 표현력이 기가 막힌 곡으로, 서정적인 전반부와 오페라적인 중반부, 브라이언 메이의 일렉트릭 기타가 폭발하는 후반부까지 곡의 진행이 변화무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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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아직도 탑 2층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어서 이 만화가 몇 천화는 되어야 끝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시던데 그렇진 않아요. 일단 1부는 8-90화 정도에 완결을 지을 생각이고, 현재 계획하는 대로라면 3~4부 정도에서 마무리 될 것 같아요. 물론 웹툰치고는 굉장히 긴 분량이죠.”
SIU 작가의 말대로 지금의 <신의 탑>은 전성기의 <헌터×헌터>나 아직도 연재 중인 <원피스>처럼 방대한 세계관을 보여주며 주인공 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여정을 가늠할 수 없게 한다. 아직까지 밤을 제외한 비선별인원의 존재는 그 악명으로만 짐작할 뿐이고, 랭커끼리의 세력 다툼이나 탑의 왕 자하드의 힘 역시 아직 명확하게 설명된 적이 없다. 연재를 시작한지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이토록 수많은 복선을 회수할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한 건 그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의 이야기들이, 탑의 저 높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고 싶어 안달이 난다면 작가의 마지막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겠다. “욕심 부리지 않고 1부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어요. 다음의 일은 그 이후에 생각하려고요. 독자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신의 탑>을 많이 사랑해주시고 제가 더 발전해나간다면 1부 이후의 목표도 차근차근 이뤄나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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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위근우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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