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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IEA 비축유 방출은 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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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IEA 비축유 방출은 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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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자에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국제유가 안정을 위해 6000만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하기로 한 결정이 "교묘하고 대담한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독일, 한국 등 회원국 관료들이 3개월 동안이나 은밀하게 모여 작업해야 했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논리는 간단했다. 리비아 내전으로 줄어든 물량을 채움으로써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국제유가가 세계 경제에 타격을 주고 물가 앙등을 가져오는 것을 막자는 것이었다. IEA가 비축유라는 스마트 폭탄으로 유가를 조절하는 중앙은행 역할을 자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미국산 서부텍사스유나 북해산 브렌트유가 배럴당 90달러대로 내려앉았으니 '효과' 만점의 정책이었다는 조금은 '성급한' 평가가 나오는 것도 그리 어색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시장에 원유를 쏟아붓는 것은 '나쁜 선례'만 남겼다는 FT 사설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리비아산 원유 부족을 메우기 위해 비축유를 푼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초점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고 소비자물가가 급등하는 데에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수요 증가는 물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풀려 약세를 보이는 달러화가 근본 원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욱이 리비아는 하루 160만배럴을 생산했지만 유럽 수요국이 좋아하는 저유황 경질유였다. 리비아는 시쳇말로 사막에 시추만 하면 고급 원유가 쏟아지지만 다른 산유국은 이를 대체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급유 가격이 고공행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400만배럴의 생산여력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는 유황 성분이 높아 이른바 선진국들이 선호하지 않는 유종이어서 사우디가 대변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산유량을 늘리겠다'고 말해도 립서비스에 그쳤을 뿐이다.


게다가 리비아 내전은 계속되고 있어 언제 생산량이 원상 복구될지 아무도 모른다. '오디세이 새벽'이라는 작전명으로 리바아의 철권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를 축출하기 위해 지난 3월19일 시작한 서방의 리비아 침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방 항공기가 1만2000회 출격해 지대공 미사일기지를 포함한 2100여곳의 각종 군사목표를 타격했지만 카다피는 여전히 건재하다. 미국은 두 번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리비아 전쟁을 동시 수행할 능력이 없어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서방군을 주도하는 영국과 프랑스는 항공기와 미사일 등 무기가 턱없이 부족해 카다피의 굴복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오는 9월이나 10월부터 프랑스와 영국 등이 정치 일정에 들어간다. 특히 군사 초강대국 미국은 내년 대선에 돌입한다. 전사자나 군사비 지출 증액은 대선의 악재여서 미국이 쉽사리 나설 것 같지 않다. 리비아 내전이 장기화하고, 서방이 리비아의 사막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 가운데 서방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고급 경질유는 부족 상태를 면하기 어렵고, 유가는 다시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IEA의 비축유 방출은 결코 바람직한 결정이 아니며 좋지 않은 선례만 남겼을 뿐이다. 더욱이 비축유를 방출한 다음에도 다시 빈 곳간을 채워야 한다. 그것은 곧 수요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자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된다. IEA가 기대하는 가격 하락은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흥시장의 수요, 고급 원유의 수급 불안, 달러 약세 등 근인에 대한 처방을 하지 않은 채 국제사회에 IEA를 앞세우고 비축유를 내세워 OPEC을 견제할 원유시장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려 하는 것은 한마디로 오산이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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