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기 전에 그들은 만담꾼이었다. 김곡·김선은 <정당정치의 원리>, <빛과 계급>, <뇌절개술> 같은 심각한 제목의 영화를 찍은 감독들이다. 진지한 영화를 찍는다고 농담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직접 만난 김곡·김선 감독은 패럴리 형제의 영화만큼이나 발랄했다. <자본당선언: 만국의 노동자여, 축적하라>(이하 <자본당선언>)나 <자가당착>이 보여준 블랙코미디의 뿌리를 짐작할 만했다. “이상형은 르윈스키”라는 당황스런 농담과 “상업적 내러티브 속에서도 충분히 실험적일 수 있다”는 시크한 진담이 섞인 왁자지껄한 대화 속에서 그들은 독립영화/상업영화의 이분법 논리로 규정할 수 없는 영화적 관점을 드러냈다. 김곡·김선의 첫 번째 상업영화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이하 <화이트>)를 단지 성공/실패의 이분법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10년째를 맞은 ‘비타협 영화집단 곡사’의 맥락에서 <화이트>가 중요한 건 김곡·김선 감독의 새로운 10년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2주간의 전국 무대인사 투어를 성황리에 마치고 귀경’한 김곡·김선 쌍둥이 형제 감독을 만났다. 농담과 진담을 종횡무진 오가는 답변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은 독자/관객의 몫이다.
“곡사는 유령집단이다”
<#10_QMARK#> ‘비타협영화집단 곡사’의 비타협 대상은 무엇인가. 주류문화나 제도, 일반성에 대한 비타협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인가.
김곡·김선 : 그렇다. 못 믿겠지만.
<#10_QMARK#> ‘비타협영화집단 곡사’에는 두 감독 외에 누가 있나.
김곡·김선 : 곡사는 유령집단이다. 나머지 멤버들에 대한 신상은 비밀이다.
<#10_QMARK#> 곡사 회원이 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인가.
김곡·김선 : 첫째, 헤픈 웃음. 둘째, 무불노동(임금을 받지 않는 노동)을 불사하는 독기. 셋째, ‘곤조’에 대한 경멸.
<#10_QMARK#> 대부분의 작품을 함께 연출했으나 <고갈>은 김곡 감독이,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는 김선 감독이 감독했다. 함께 연출할 때와 혼자 연출할 때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불편한가.
김곡·김선 : 둘이 할 땐 외롭지 않아서 좋고, 혼자 할 때는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서 좋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건 혼자서는 못 하는 작업량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을 정말 존경한다. 후배들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도저히 편 수를 따라갈 수가 없다. 속도 때문에 따로 작업하기도 한다.
<#10_QMARK#> 주로 내러티브보다 형식주의적이고 실험적인 독립영화를 찍었다. 갑자기 상업 극영화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곡 : 전환한 적 없다. 실험이란 말에는 많은 오해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분류 불가능한 장르,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장르를 실험이라고 말하는 오해이다. 처음 보고 뭐라 규명하기가 어려우면, ‘옜다, 실험영화구나’라고 말해버리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곡사의 영화는 실험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게 된다. 이런 식으로 귀결되는 감사한 과찬은, 실험이란 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기에, 정중히 사양하겠다.
<#10_QMARK#> 그러면 저예산 독립영화를 찍다 대기업이 투자·배급하는 상업영화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곡 : 이미 몇 년 전 상업영화를 찍을 생각이었다. 2007년쯤이었다. 하필 그때 한국 영화계가 갑자기 힘들어졌다. 그때를 기점으로 ‘유아곡사’와 ‘청년곡사’로 나뉜다. 상업영화는 어느 날 불현듯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게 아니다. 영화란 어차피 대중과 만나야 한다. 아무도 안 봐도 영화란 군중의 것이다. 작품을 해오면서 스케일을 늘려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곡사 느낌의 대중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침 < Bomb! Bomb! Bomb! >을 찍게 됐다. ‘극영화도 될까’ 하며 우리 자신에 대한 실험을 한 거다. 크게 다른 건 없더라. 어차피 ‘극영화’나 ‘실험영화’로 시작한 게 아니라 ‘영화’로 시작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극이라는 형식, 내러티브라는 포맷 자체에서 곡사의 느낌을 주는 것이 지난 몇년간 우리의 과제였다. <뇌절개술>과 <방독피>가 ‘곡사적인’ 내러티브의 영화였다.
“악평·악플에 상처받지 않는다”
<#10_QMARK#> <화이트>에 대한 언론과 평단의 반응이 썩 좋지는 않다. ‘김곡·김선의 상업 공포영화’에 대한 실망을 표하는 글도 많다.
김선 : 단편 중에 옴니버스 영화 <세번째 시선>에 포함됐던 < Bomb! Bomb! Bomb! >이라는 음악영화가 있었다. 아이돌을 다룬 영화라서 그 영화의 감수성을 기대한 사람도 있었나 보더라. 우리가 공포영화를 만든다니 <방독피>나 <고갈> 같은 영화의 강렬한 이미지를 생각하며 엄청난 괴물을 기대한 사람도 있었을 텐데 15세 연령대에 맞춘 하이틴 영화라 실망한 사람도 있는 것 같고.
김곡 : 악평이고 악플이야 언제나 듣던 거라서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설령 상처를 받더라도 그 상처가 우리가 만드는 영화에까지 전이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우리는 악평을 언제나 두 가지로 분류한다. 첫 번째 곡사에 대한 애증. 두 번째 자신의 견문과 지식을 투영하려고 영화를 희생타 삼는 ‘자뻑’. 전자는 취하지만 후자는 씨알도 안 먹힌다.
<#10_QMARK#> <화이트>에 대한 악평의 일부는 두 감독에 걸었던 기대에 대한 실망이었다.
김곡 : ‘영화평’보다는 ‘곡사평’이 대부분이다. 자식 낳는 입장으로서, 부모가 자식을 가리는 것만 같아 <화이트>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10_QMARK#> <화이트>에서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무엇인가.
김곡·김선 : 어둠에 잠긴 색깔들. 그리고 같은 말이지만 반짝반짝. 심지어 공포도 반짝반짝하게, 그래서 영화 전체를 한 편의 반짝이는 뮤직비디오처럼 만들고 싶었다.
<#10_QMARK#> 한국의 공포영화는 타깃 수요층이 한정적이어서인지 대단히 관습적이다. 특히 10대 대상의 15세 이상 관람가 공포영화들이 더욱 그렇다. 10대 취향의 관습적인 공포영화에 대한 반감은 없었나.
김곡·김선 : 만들 때는 거부감이 없었는데, 만든 후에는 거부감이 있더라.. 역시 공포영화는 ‘19금’인가 보다.
<#10_QMARK#>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귀신이나 살인마, 광적인 존재, 괴물, 미지의 존재 등이 나오는 영화인가 존재론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영화인가.
김곡 : 당연히 후자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도 영혼을 엄습하는 그늘이 있다. 가스파 노에, 미카엘 하네케, 필립 그랑드리외 등의 감독들이 진정한 선수들이다.
“아이돌은 자본주의의 역군이자 설계도”
<#10_QMARK#> 주연배우인 티아라 함은정과 작업하며 실제로 아이돌 가수의 삶을 옆에서 보니 어떻던가.
아김곡·김선 : 아이돌은 진정 자본주의의 역군이자 설계도이다. 자본의 근황들을 매우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령 노동과 여가가 구분되지 않는다든지, 생산과 소비의 주기가 극단적으로 짧다든지.
<#10_QMARK#> <자가당착>과 <화이트>는 물리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모두 마리오네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이돌도 한편으로는 대중음악 산업의 마리오네트 같은 존재이니까. 마리오네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곡·김선 : 이 세상에 대한 가장 뛰어난 표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보다도, 어떻게 견뎌서 생을 흉내내는지에 대한 연구들이다.
<#10_QMARK#> 곡사의 영화를 보면 마리오네트, 인형, 가면, 탈 또는 그로테스크한 분장 등 원래 모습을 지우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자본당선언> DVD 부가영상에는 두 감독이 복면을 쓰고 있다.
김곡·김선 : 결국 가면 뒤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10_QMARK#> 관객 입장에서 <화이트>가 무섭지 않았던 건 아이돌 멤버들 사이의 경쟁이 무섭다기보다 측은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슬픈 감정을 강조한 영화도 아니었다.
김곡·김선 : <화이트>는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충분히 무섭다. 만약 무섭지 않다면, 우리가 이제까지 전제로 삼아왔던 집, 화장실, 엄마, 가족과도 같은 정신적 서스펜션들을 아이돌이 가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난 이게 더 무섭다. 아이돌 가수들은 고아나 마찬가지다. 집도 없고 엄마도 없다. 쉬지 않고 무대 위를 옮겨 다닌다.
<#10_QMARK#> <화이트>를 만들면서 어떤 점이 어려웠나.
김선 : 자본주의 시장 안에서 15세 타깃의 공포영화이고 혼령물이며 음악영화인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이돌+호러’라는 이상한 장르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웠다. 안 해보던 장르영화 안에서 우리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 실은 더 어려웠다. 침대 아래나 화장실은 무서울 수 있다. 그러나 오픈된 공간인 무대에서 춤추는데 무섭게 하기는 쉽지 않았다.
김곡 : 음악영화와 공포영화를 합친 것 자체가 곡사다움이었다. 보는 사람은 모른다. 만드는 입장에선 죽을 맛이었다. 이 영화는 내러티브가 촘촘하고 견고하진 않다. 승부수는 확실히 이미지였다.
<#10_QMARK#> 원래 공포영화를 좋아했나.
김곡·김선 : 지금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우리는 취향이 비슷하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브라이언 드 팔마, 데이비드 린치 등의 감독들 영화를 좋아했다.
김선 : 개인적으로 가장 숭배하는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다. 김기영 감독의 사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다.
“다음 영화는 정치 코미디”
<#10_QMARK#> 초기 영화들을 보면 형식에 대한 고민이 많이 보인다. 반복과 변형, 축적 등의 형식적인 실험을 하기도 했고. 특히 <자본당선언>이 그렇다. 당신들은 유물론자인가.
김곡·김선 : 형식을 깨기 위해 그렇게 한 건 아니다. 한편으로는 형식도 내용이고, 형식으로 세상을 베껴 보려는 욕심이었다. 우리는 형식과 내용이 일치해야 한다고 본다는 점에서만 유물론자들이다. 가령 우리 어머니는 단백질이나 자궁이 아니라, 나의 실존적 형식이다.
<#10_QMARK#> 글 쓰는 작업은 동시에 함께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는 누가 주도해서 쓰나.
김곡·김선 : 곡사의 시나리오는 김선이 주도한다. 김선은 1년에 20편 이상을 쓰고, 나는 2년에 1편을 쓸까 말까 한다. 곡사에서 나는 흡사, 앨범 내면 곡 한두 개 겨우 쓰고 다른 멤버들이 써온 곡들을 편곡하는 베이시스트 같은 놈이다.
<#10_QMARK#> 코미디 영화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상업적인 코미디 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나.
김곡 : 여기에도 저기에도 못 끼는 사람들에 대한 코미디를 만들어 보고 싶다. 예컨대 간첩 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
<#10_QMARK#> 김곡 감독은 단독 연출작 <고갈>이나 김선 감독과 같이 연출한 < Bomb! Bomb! Bomb! > 관련 인터뷰에서 “내 영화 중에는 내가 봐도 불편한 게 있다”, “우리 영화 보고 안 자는 게 이상한 것 같긴 하다” 등 위험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했다. 진심인가 위악인가.
김곡 : 위악이 아니다. 진심이다. 우리도 우리가 만든 어떤 영화들을 보고 불편하다. 그렇지만 우린 이것이 결코 창피하지 않다. 왜냐면 영화는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0_QMARK#> 초기 영화들은 종종 관념적이고 난해했다. 그 작품들에 대해 지금 판단한다면.
김곡 : (모든 작가가 그러하듯) 통과제의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립다. 종종.
<#10_QMARK#> 10년간 영화를 만들어오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김곡·김선 : (자본과 구분되는 의미의)돈이다.
<#10_QMARK#> 상업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시대정신을 품고 현실 참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김곡 : 전면전보다는 진지전으로. 돌격전보다는 세균전으로. 죽창보다는 바이러스로.
<#10_QMARK#> 다음 작품 계획은.
김곡 : 정치 코미디인데, 이런 거 한국에서 상영될 날이 와야할 텐데. 시나리오 쓸 때마다 계획을 짜놓고 하긴 하는데 계획대로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때마다 받는 인상에 따라 달라진다. 계획한 거나, 나오는 양상이 일치하진 않더라.
10 아시아 글. 고경석 기자 kave@
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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