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정부가 연간 104조 4000억원에 이르는 공공조달 시장에서 사실상 대기업 계열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업체(MRO)들을 배제하기로 했다. 지식경제부는 이미 60개 산하 기관에 '중소기업 MRO를 이용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고,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대기업 계열 MRO 조사도 시작됐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중소기업을 살리고, 내수활성화의 동력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련 내용은 오는 30일 내수 활성화를 뼈대로 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담겨 발표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9일 "공공조달 시장을 중소기업 MRO 중심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관련 내용은 이달 말 각 부처가 함께 내놓을 내수활성화 대책에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대기업 MRO 규제에 나선 건 이들이 풀이나 가위 같은 문방구를 비롯해 면장갑, 곡괭이, 쓰레기통 같은 소모성 물품 시장에까지 진출하면서 중소기업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중소기업을 살려야 할 정부가 나서 대기업 MRO와 거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진 것도 부담이 됐다.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은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33개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이 대기업 MRO를 통해 모두 415억1038만원어치의 소모품을 사들였다고 주장했다. 전체 공공조달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절대적인 금액은 크지 않지만,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강조해온 정부로서는 민망한 지적이다.
이에 김황식 국무총리는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대기업 계열 MRO를 통해 자재를 더 많이 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동수 공정위 위원장도 "당초 대기업 계열 MRO 업체를 활성화한 건 소모성 자재 공급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지만, 계열사 부당 지원이나 편법 재산 증식의 소지도 있다"며 강도높은 조사를 예고했다.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종합해 내놓을 재정부 측은 "품질과 가격만 괜찮다면, 공공조달 시장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꾸리는 건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일"이라며 "내부 규정만 손질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도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좀 더 다듬어야 하지만, 재정부에 제출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관련 부처 의견에 MRO 관련 내용이 반드시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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