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2월 미국 LA 포틀랜드 항. 낯선 소형차가 화물선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울산항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온 현대자동차의 1300~1500㏄급 엑셀 승용차였다. 개발도상국의 이름 없는 자동차업체가 세계 자동차의 각축장인 미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고 첫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엑셀은 경제적인 소형차라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 진출 첫해 16만8882대를 팔아 수입차 최대 판매기록을 세웠다. '엑셀 신화'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25년, 현대ㆍ기아자동차가 '미국시장 점유율 10% 돌파'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현대ㆍ기아차는 지난달 미국에서 10만7426대를 판매, 시장점유율이 10.1%에 달했다고 밝혔다. 현대차 판매대수는 전년보다 21% 늘어난 5만9214대, 기아차는 53.4% 증가한 4만8212대에 달했다. 미국의 전체 시장이 4% 뒷걸음질한 것을 감안하면 두드러진 성과다. 이에 따라 일본의 혼다와 닛산을 제치고 5위로 올라섰다.
현대ㆍ기아차는 지난 3월 미국시장 누적판매 1000만대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외국업체로는 일본의 도요타, 혼다, 닛산에 이어 네 번째였다. 그렇지만 현대ㆍ기아차가 미국시장에서 걸어온 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엑셀 신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일본산 자동차와의 가격 차가 좁혀지고 품질과 정비망 부족이 문제시되면서 1990년대 들어 급격히 추락했다.
이후 현대차가 '품질경영'을 앞세우며 공격적인 마케팅에 들어가자 미국 소비자들의 이미지가 나아지기 시작했고 2001년 판매대수가 처음 50만대를 넘어섰다. 이때의 시장점유율이 3.3%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고객이 실직했을 때 되사주는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을 내놓는 등 변화에 맞춘 마케팅이 주효하며 시장을 넓혔다.
그렇지만 현대ㆍ기아차가 샴페인을 터뜨리기는 이르다. 대지진 이후 일본 업체들이 생산 라인을 정상 가동하지 못하는 데 따른 반사이익이 적지 않다. 도요타의 추락에서 보듯 지금의 성취에 자만하면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일본을 넘어서고 유럽의 명차와 경쟁하려면 갈 길이 멀다. 미래의 승부처인 그린차 개발 경쟁에서도 한참 뒤져 있다. 시장점유율이 올라갈수록 견제는 심해진다. 다시 신발 끈을 조일 때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