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지연진 기자]북한이 우리 정부의 비밀 정상회담 제안을 폭로했다. 지난달 9일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 당국자들이 '비밀접촉'을 갖고 정부가 올해 6월과 8월, 내년 3월 등 세 차례의 정상회담 개최와 이를 위한 한 차례의 장관급 회담 개최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남북간 '비공개 접촉'은 공공연하게 알려졌지만, 북한이 접촉사실을 폭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정부의 '천안함ㆍ연평도 사과' 요구를 북한이 거부하면서 남북관계는 더욱 냉랭해질 전망이다.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1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 형식을 통해 지난달 9일 김천식 통일부 정책실장과 홍창화 국가정보원 국장,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등이 베이징에서 북측과 비밀접촉을 갖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또 "정상회담을 빨리 개최시키자"며 돈 봉투까지 거리낌 없이 내놓고 유혹하려하다 망신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난달 30일에 이어 이날도 "너절하게 행동하는 이명박 역적패당과 더 이상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화 중단을 선언했다.
정부는 "우리의 진의를 왜곡한 주장"이라며 "일일이 대응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반박했다. 청와대와 대북 관계자들은 북한의 폭로 직후 대책회의를 가진 뒤 통일부 천해성 대변인을 통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북한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돈봉투 주장에 대해선 "있을 수 없다"고 부인했다.
우리 정부와 북한의 비밀접촉이 성과를 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사과를 북한이 끝내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밀접촉을 공개함으로써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후반기를 맞았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만큼, 대북정책에 있어 남남갈등을 증폭시키려는 목적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더이상 거론하지 않을테니 제발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갖자고 구걸했다", "돈봉투를 내놓고 유혹하려다 망신을 당했다" 등 남한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모두를 자극하는 발언들은 여론분열을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국내 정치용 또는 중국에 대한 반발용이란 관측도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공개적으로 (남북 베이징 접촉을) 왜곡한 의도에 대해 무엇인가 복잡한 내부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전했다. 김연수 국방대 교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북ㆍ중회담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이 남북관계에서 냉정과 자제를 요구하자, 이에 맞서 시위하는 듯 하다"고 말했다.
향후 남북관계는 암울하다. 북한은 당장 '통미봉남(通美封南ㆍ남한을 봉쇄하고 미국과 대화)'정책에 몰두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버트 킹 미국 북한인권특사의 방북, 한국계 미국인 전용수씨 석방 등 최근 미국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도 이런 전망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우리 정부로서도 북한에 대한 체제 안전과 경제지원은 물론 '3대 세습 인정'까지 내걸면서 북한의 핵 포기와 천안함ㆍ연평도 사과를 요구한 만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남북간 경색국면이 이어져왔기 때문에 더 나빠질 것도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인식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에 우려감을 표했다. 북한은 도발 때마다 사전에 성명 등을 통해 대남 비방전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양낙규 기자 if@
지연진 기자 g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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