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어머니는 '물질'을 했다. 바다에 몸을 맡기고 소라와 멍게를 걷어올려 지폐과 바꿨다. 지폐는 다시 쌀로 교환됐고, 쌀은 익어 밥이 되어 아이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할머니에게서 배운 물질을 딸에게 가르치고, 딸 역시 그 딸에게 가르칠 것이다.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늙어감'이란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라 했다. 올해 77살의 그의 갈색 눈동자에는 노쇠가 가져올 법한 눈꺼풀의 떨림조차 없었다. 여성운동의 대모로서 한 평생을 살아온 그의 이력이 쌓아온 무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를 '제주포럼'에서 만났다.
그는 잡지 '미즈(Ms.)'를 창간하면서 여성을 결혼여부에 따라 '미스(Miss)'와 '미세스(Mrs.)'로 나누던 현실을 고발하고, 휴 헤프너가 운영하던 플레이보이 클럽에 '바니걸'로 위장취업해 숨겨졌던 성매매를 폭로했다. 이런 이력에서 보듯 스타이넘은 그의 어머니와 같은 직업, 기자다. 그를 만나서는 대뜸 '늙어보니 외롭지 않냐'고 물어봤다.
"결혼한 커플조차도 외로움을 느끼지요. 개성을 살리면서 살아야해요. 결혼한 내 친구도 외롭다고 하던데요"
사실 스타이넘은 딱 한 번 결혼했다. 영화 '다크 나이트'의 주연배우 크리스천 베일의 아버지와 말이다. 2000년 결혼하고, 2003년에 사별했다. 그는 행복했던 결혼이라고 했다.
"난 페미니즘을 '인간성'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해요. 폭력을 거부하지요. 여자 역시 폭력에 대항해 '자기를 재탄생'시킬 권리가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물질'을 설명했다. "경제적 독립이 인간성 회복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제주도에선 '물질'을 한다더군요. 그런 '물질'이 다른 여성에게도 필요합니다"
단, 그 역시 '된장녀'는 질색인 듯했다. 우아하게 스카프를 두른 옷차림이 인상적이라고 했을 때였다. "난 패션 리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하. 패션은 다른 사람이 입으라고 권하는 거지요. 그 보단 스타일을 갖추라고 하고 싶어요. 자신의 '일관성'과 자기다움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말이지요. 아, 그리고 이 스카프는 서울에서 산 거에요"
아버지와 관계는 어땠냐고 물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가정 분위기가 달랐을 거란 기자의 편견이 작용했는지 모른다. 그는 그러나 "훌륭한 아버지였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하고 싶은 것을 도와주고 이해해줬다.
인터뷰 끝자락 즈음에 남자인 기자에게 가르쳐줄만한 얘기가 있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자 속에도 여성스러움이 있고, 여자 속에도 남자다움이 있지요. 그걸 마주하길 두려워마세요. 그러면서 인간의 완전함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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