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건물 수명은 얼마나 될까.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30∼40년 정도 되면 한계수명에 도달한다. 하지만 건물 수명을 무려 120년이나 잡고 회계처리한 곳이 있다.
대한생명이 보유한 63빌딩이 주인공이다. 기업들이 보유한 건물의 내용연수(수명)는 일반적으로 15∼30년, 길어야 60년 정도로 잡고 노후에 따른 가치 하락을 반영해 비용처리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내용연수가 길면 길수록 매년 건물노후화에 따른 감각상각비용을 적어지는 효과가 있다. 기업의 입장에선 내용연수 기간을 늘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쉬운 이유다.
27일 대한생명에 따르면 1985년 63빌딩을 준공했을 당시 내용연수 즉 건물 수명을 120년으로 잡고 최근까지 감각상각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생의 한 관계자는 “당시 건물을 워낙 튼튼하게 지었다는 점을 감안해 내부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내용연수가 과대평가됐다고 보고 최근 60년으로 줄였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등 대부분의 기업들은 건물 내용연수를 길어야 30년을 넘지 않게 잡는다. 60년까지 잡은 기업도 손을 꼽을 정도다.
내용연수기간이 길면 길수록 한해에 비용으로 처리해야할 감각상각비가 그 만큼 적어지기 때문에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는 착시 효과가 나올 수 있다. 잔존가치를 평가할 때 실제 평가 시점의 잔존 가치가 늘어나 감가상각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부터 도입된 한국채택회계기준(K-IFRS)에선 내용연수와 잔존가치, 감가상각 방법을 실제 소비행태를 반영해 추정하게 했다. 즉 기계장치, 토지, 건물 등 유형자산의 변동이 더욱 심해진다.
실제로 현대건설은 최근 본사와 서산건척지 등 일부 토지를 재평가한 결과 2646억6328만원의 평가차익이 발생했다. 이는 자산총액의 2.94% 규모다.
대한도시가스도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27-1 외 54필지의 자산재평가 결과 총 1425억원의 재평가 차액이 발생했다. 이는 자산총액대비 17.6%에 해당하는 금액 규모다.
IFRS에선 유형자산의 후속측정에 대해 원가모형과 재평가모형 중 기업이 자율적으로 선택해 적용토록 하고 있다. 문제는 재평가 모형을 선택한 경우에 유형자산을 보고기간 말의 공정가치로 측정한다. 현재 장부가액으로 되어있는 토지·건물 가액이 시가로 재평가되면 토지·건물의 가격 증가에 따른 자산금액 급증하게 되는 착시효과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런 착시효과를 노린 기업들의 유형자산재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전체 유형자산 중 토지·건물이 74%나 차지하고 있는 대한통운도 현재 장부가액으로 되어있는 토지·건물 가액을 시가로 재평가 방법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선 기업 M&A시장에 최대 화두로 떠오른 대한통운이 유형자산의 재평가가 이뤄지면 토지·건물의 가격 증가에 따른 자산금액 급증이 예상된다.
흥국화재도 최근 강남사옥 외 10건의 토지 및 건물에 대한 자산재평가를 결정했다. 이 자산들의 장부가액은 1334억9500만원이지만 향후 자산재평가에 따라 크게 상향될 예정이다. 흥국화제의 경우 지난 20일 최근 사업연도말(2011년 3월말) 현재 ‘자본금의 100분의 50이상 잠식(57.2% 잠식)’된 상태다. 이에 따라 홍국화제측이 자산재평가를 통해 자본 잠식을 떨어 버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자산재평가 후 평가이익이 급증했다고 해도 사실상 기업가치가 좋아지는 게 아니란 점에서 투자자의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 지난 3월 대우차판매는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면동 620-4외 도시개발사업부지 및 송도유원지 등 자산재평가 후 차익이 1535억원에 달한다고 밝힌 뒤 주가가 10%전후의 급등세를 보였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건물 등 유형자산의 재평가를 해 기타포괄이익이 증가되는 경우 부채비율 등의 재무비율을 개선시켜줄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회계상의 수치일 뿐 기업의 현금흐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기업가치에는 영향이 없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규성 기자 bob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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