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지금 소통은 끝났다. 단연코 소통 부재는 무엇인가의 소멸로 이어질 것이다. 어떤 소멸일 건가 ? 우선 소통 부재를 초래한 집단이 제일 먼저 소멸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소통을 요구하는 집단의 소멸이거나 둘 다일 수 있다. 생각이 단절되고, 말이 막히고, 토론은 사라지면 나타날 귀결이다. '둘 다 ?' 당연히 그렇다. 두 집단 사이의 생태계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동남권 신공항, LH 본사 이전, 과학벨트 등 국책사업 선정 과정은 소통 부재를 실감케한 사례들이다. 전국이 사분오열되고, 지역은 고립ㆍ단절됐다. 소통의 네트워크는 붕괴됐다. 그 자리에 갈등, 반목으로 채워졌다.
왜 소통해야하는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생존해가는 전략을 보면 그 해답이 있다.
식물들이 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쪽으로 진화한데는 생존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다. 나무들이 햇빛을 모아서 열매를 더 크고 먹음직스럽게 맺는데도 마찬가지다. 동물들은 또 어떤가 ?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 하나도, 숫사자들의 멋진 갈기도 다 생존과 관련이 있다.
생명속에 내재된 비밀의 열쇠는 소통이다. 사람의 신체도 그렇다. 세포와 세포들간의 소통의 결과로 감각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인접한 세포들은 정보전달과 협력을 통해 외부의 세균과도 싸우고, 위험을 감지하며, 움직이게 한다. 또한 산소와 양분을 이동시킨다.수천억개에 이르는 낱낱의 세포와 몸 전체가, 몸 전체와 하나의 세포가 뇌를 중심으로 소통하며 생명을 유지한다.
사람에게서 내부의 소통시스템이 무너지는 현상을 죽음이라고 말한다.식물들의 경우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넓은 들판으로 나아가거나 높은 산을 가벼이 오른다. 심지어는 군락을 이루고, 어느 한 공간을 점령해 거대한 숲을 이루기도 한다.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은 무수히 많다. 중생대 쥐라기의 어떤 식물들은 몸통이 크고 목이 긴 초식공룡을 통해 이동했다. 식물의 씨앗을 먹은 초식동물들이 배설하는 곳을 따라 터전을 확대해 나갔다.어떤 식물은 바람을 타고 이동하거나, 동물의 살갗에 매달려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환경에서 진화를 거듭해온 식물들은 더욱 고도한 소통의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여기 사과나무 몇그루가 있다. 봄이 와서 그들은 꽃을 피운다. 사과나무는 바람에 꽃가루(화분)을 날려보내는 불확실한 방식 대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벌들의 발가락을 이용한다. 사과꽃은 벌을 부르기 위해 아름답고 예쁜 잎새를 펼친다. 벌들이 온다. 사과꽃은 그들에게 맛있는 꿀을 준다. 대신 발가락에 수분도 뭍혀준다. 꿀을 딴 벌들은 부지런히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며 수정을 돕는다. 그러면서도 벌들은 절대로 꽃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이것으로 사과나무가 생존을 영속하기는 무엇인가 부족하다. 곧 사과나무는 수정된 꽃을 달콤하고 보다 큼직한 열매로 키워낸다. 사람들이 열매를 먹고 씨를 버린다. 이듬해 씨가 떨어진 자리에서 사과나무가 솟아난다. 사과나무는 두개의 소통시스템 즉 네트워크를 가지고 생존을 확대한다. 또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가진 것들을 공유한다.
사람과 식물, 자연과의 관계도 소통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다. 여기서 소통을 멈추면 어떻게 되는가 ? 벌들도 사과나무도 금새 소멸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소통은 생존의 법칙이면서 자연의 법칙이다. 또한 이 법칙들의 중복을 우리는 역사라고 한다. 역사는 수많은 생존과 자연의 법칙이 중첩되고 , 진화하면서 이뤄졌다.
식물의 진화가 인간의 진화로 이어졌고, 역사의 진화로 순환해왔다. 따라서 수만년 인류가 발전해온 것은 수많은 생명체의 소통과 진화의 결과다.
결코 식물들은 혼자서 생존을 도모하지 않는다. 실제로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해 꿀과 과실이라는 소통의 방식을 동원한다. 즉 소통은 공존인 동시에 포용이다. 벌도 마찬가지다. 꿀을 얻는 대신 수분을 옮겨줘서 주변에 더 많은 꽃들이 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벌에게는 꽃을 피우는 식물들을 많이 만들어야 산다. 식물 또한 개체의 확대로 고립을 탈피한다. 둘 사이는 필수불가결한 관계다.
어떤 연구 결과를 보면 지구상에 벌이 사라지면 식물이 3년내에 절반 이상 멸종하며 동물의 대부분도 사라진다.벌과 인간은 꽃을 통해서 소통하고, 그 소통은 지구 환경 전체의 생존체계로 확대된다.생존을 위한 영속성을 가진 것이라면 소통을 필수적이다. 소통은 자연의 법칙인 동시에 역사, 문명, 종교의 법칙이기도 하다. 인간 역사의 법칙도 자연의 법칙과 다르지 않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라고 했다. 역사는 살아남은 것들의 기록이며 살아남는 것들은 다시 역사를 기록해간다. 사람과 사람, 동물과 식물, 식물과 식물, 동물과 동물, 사람과 동물, 사람과 식물의 관계맺음, 즉 소통의 방식을 통해 서로 생존을 공유한다.
소통이란 다른 말로는 포용이다. 벌과 꽃의 관계처럼. 소통의 오류는 극단적으로 도태를 의미한다. 소통하지 않으면 죽는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모두 그렇다. 나아가 역사도 소통의 축적된 결과물이다. 소통이 멈추면 어떻게 되는가 ? 좀 더 범위를 넓혀보면 거대한 집단이나 국가, 민족들마저도 소통의 부재로 몰락해가는 것을 수많은 실증들이 확연히 보여준다.
역사상 몇몇 왕조는 근친상간을 통해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려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유전적 결함으로 멸망을 자초했다. 인간과 집단, 사회도 결코 소통 전략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소통하고 또 소통하라. 죽기 싫으면 소통하라."
무능한 집단에게 말해본들 알아듣기나 할런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규성 기자 peac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