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지방이전지는 이미 경남혁신도시로 매듭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서 그리 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이쯤 되면 다음 주 나온다는 정부안 발표와 이를 토대로 한 지역발전위원회 심의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다.
하지만 문제는 한 공공기관의 이전지 결정이 '정치적'으로 해결되는 모양새다. 물론 지자체나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들의 힘 대결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거대한 공공기관, 그것도 연간(2010년 기준) 2155억원의 이익이 나고 1400여명의 인원이 체류하는 대한민국 대표 통합 공기업 본사가 위치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지역의 위상이 달라질 일이다. 더욱이 지난해 기준 약 262억원의 지방세를 냈다고 하니, 재정이 열악한 지방 지자체로서는 기를 쓰고 LH 이전을 바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경남도청과 전북도청이 반복해서 성명을 내고 여러 국가 기관과 국회 등에 이전의 불가피성을 역설해 왔다. 그것도 모자라 두 지자체는 성남 분당의 LH 본사를 찾아 이전을 호소하기도 하고 LH 임직원들에게까지 일일이 '연애편지'를 보내며 구애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권력을 쥔 여당이 LH를 경남혁신도시로 몰아주는 것 같은 분위기는 보궐선거를 통해 나타난 민심을 더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역발전위원회라는 조직을 통해 경남혁신도시로 옮겨가도록 결정하는 절차적 정당성은 구할 수 있을지언정 그리 결정돼야만 하는 근거가 뚜렷하지 않아서다. 통합됐으니 한 도시로 일괄해 옮겨가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어느 도시로 가는 것이 마땅한지에 대해서는 보는 시각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마련이다.
더욱 큰 문제는 정치적 힘 대결로 LH 이전지역을 결정할 경우 전체 '혁신도시'의 틀이 훼손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추진되기 시작한 혁신도시는 당초 4가지 유형으로 건설하기로 했으며 기능군별 배치를 원칙으로 정했다.
예를 들어 부산의 경우 영상산업군과 해양수산기능군, 금융산업기능군에 속하는 공공기관을 이전시키는 식이다. 이렇게 11개 혁신도시를 기능군별로 특화시켜 조성하겠다는 구상이 정치적 결정으로 와해된다면, 혁신도시는 여전한 지방이전에 따른 업무효율 논란에 이어 정체성 논란마저 불붙을 가능성이 커진다.
혁신도시 추진과정에서 경남은 주택건설기능과 산업지원기능 등이 핵심으로 짜여졌다. 또 전북은 국토개발과 농업지원 등의 기능을 근간으로 하도록 했다. 따라서 주공과 토공이 합쳐진 만큼 경남의 주택건설기능과 전북의 국토개발기능을 먼저 조정한 후 이전지역이 결정돼야 한다. 즉 전북혁신도시의 국토개발기능군을 모두 경남으로 이전시킨다면 경남으로 이전할 계획이었던 산업지원기능군을 모두 전북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시도별 지역산업과 연계한 기능조정이 돼야하고 도시개발규모에 따른 도시특성을 다시 해석해 반영하는 등의 문제는 남는다.
경남혁신도시에 LH를 이전시키고 전북에는 세수보전을 해주겠다는 방안 역시 이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땜질처방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와 정치권은 특별법에 의해 추진되는 혁신도시 조성사업이 더이상의 소모적인 논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다.
또 정부의 초광역권 발전구상과 연계한 지역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이전지역 결정과정에는 힘의 논리가 아닌 충분한 설득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
소민호 기자 s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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