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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멀쩡한 집 왜 철거하나?"..슬럼가로 변한 아현뉴타운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48초

철거 이주수요에 전·월세 가격 치솟아

[르포]"멀쩡한 집 왜 철거하나?"..슬럼가로 변한 아현뉴타운 아현뉴타운 3구역 공사현장. 철거 단계의 빈 주택이 흉물스럽게 현장에 남아있다. 조합장 비리 문제로 한동안 사업이 표류상태에 있었으나 오는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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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멀쩡한 집을 왜 철거하는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어. 자네는 아나?" "이거 다 부수고 아파트 지으려고 그러는거 아냐. 아파트 지어도 여기 살던 사람 열이면 아홉은 못 들어와. 쫓겨나는 거지"

서울 마포구 아현뉴타운 3구역 현장. 골목골목마다 들어선 주택과 가게들 뒤편으로 민둥산처럼 휑한 공사현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군데군데 파란 장막이 처져 있지만 근로자나 굴삭기 등이 움직이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2009년 11월 마포구가 3구역에 대해 착공을 승인했지만 2년여가 지난 지금도 공사는 제자리걸음이다.


공사장 주변을 둘러산 임시 담벼락 바로 앞에는 문방구며 미장원, 구멍가게가 늘어서 있다. 주민들 서너 명이 가게 앞 평상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아현동에서만 20년을 살았다는 김정옥(53세·가명)씨는 지난 해 12월 정든 동네를 떠나 창신동으로 이사했다. 집주인이 쥐어준 900만원 상당의 이주비를 받고서야 겨우 월세 20만원짜리 방 한 칸을 구했다고 했다. 다니던 교회나 친구들이 아현동에 있어 매일 이 곳으로 놀러오지만 다시 이 동네로 돌아올 생각은 '언감생심'이다.

실제로 뉴타운 지역은 원주민들의 재정착률이 낮아 문제가 되고 있다. 뉴타운 사업의 첫 시작을 끊은 은평, 왕십리, 길음 등 시범뉴타운에서의 재정착률도 20%가 채 되지 못했다. 주민들의 3분의 2 이상이 뉴타운 사업으로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아현뉴타운 주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주민들 대다수가 이 지역에만 수십년을 살던 서민층이 대부분이라 수억원대에 달하는 분담금을 낼 형편이 안된다.


다세대 주택에 세들어 살던 세입자들의 상황은 더 난감하다. 철거가 진행되면서 아현1동에 살던 세입자들은 2동으로 옮기고, 2동 철거가 시작되면 다시 3동으로, 그 다음은 외곽지역으로 옮겨가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이주수요가 몰리다 보니 전월세 가격도 많이 올랐다.


인근 S공인 중개소 관계자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 하던 방이 1년만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으로 올랐다. 예전에는 월세 10~15만원하던 방도 수두룩했는데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철거주민들이 이 근방으로 이사하다보니 옆동네인 대현동 인근도 방값이 오르는 추세"라고 말했다.


[르포]"멀쩡한 집 왜 철거하나?"..슬럼가로 변한 아현뉴타운 아현3구역은 아현뉴타운 최대 규모인 3000여가구가 건립되며, 올해 하반기(7~12월) 공사에 들어가 오는 2014년 입주가 이뤄질 예정이다.



철거 및 공사가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다보니 남은 빈 집과 공터가 흉물스럽게 남아있는 것도 문제다. 일부 공사현장이 슬럼화되거나 우범지대로 변한 것이다. 지나가던 한 주민은 "일단 공사에 들어갔으면 빨리 지어야되는 거 아니냐. 땅 파헤쳐놓은 상태로 몇 년째 방치해놓다보니 지나다니기도 무섭다. 밤되면 도둑도 자주 든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돈다"라고 설명했다.


아현뉴타운을 돌아나와 도로 하나를 건너면 웨딩타운과 가구거리가 들어서 있는 북아현뉴타운이 나온다. 이 지역은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착공에 들어갈 예정으로 현재 대부분의 철거가 진행돼 남아있는 가구는 50여가구 정도에 불과하다. 2003년 아현뉴타운이 지구지정된 지 2년 뒤 맞은 편 북아현뉴타운도 뉴타운재개발 지구로 지정됐다.


먼저 사업이 진행된 아현뉴타운 일부 구역에서 조합장 비리 문제로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는 사이 북아현뉴타운도 사업절차를 밟으면서 이 일대 세입자들의 주거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르포]"멀쩡한 집 왜 철거하나?"..슬럼가로 변한 아현뉴타운 북아현동뉴타운. 대부분의 지역에서 철거가 진행돼 현재 50가구 정도가 남아있는 상태다.



북아현동에서 만난 김명호(46세·가명)씨는 "맞은편 공사부터 좀 끝난 다음에 순서대로 공사를 해야되는데 서로 경쟁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북아현뉴타운 사업이 더 빨리 끝날 거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다들 쫓겨나고 돈 있는 몇 명 집주인들만 신났다"고 말했다.


뉴타운사업이 완료되는 2015년경이면 108만8000㎡ 규모의 아현뉴타운은 최대 1만8500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63만㎡의 북아현 뉴타운 역시 3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총 8600가구의 아파트촌으로 변신한다.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지나가는 말로 얘기한다. "이거를 서민용아파트로다 지어가지고 좀 싸게 공급하면 모를까 여기 주민들 한 100명에 10명 살 수 있을랑가." "절대로 그렇게는 안 될거다. 여기가 역세권이고 환경이 좋아서 아파트도 비싼 아파트 들어온다고 하던데..."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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