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일 발표한 석유가격 안정화 대책의 골자는 정유사폴 주유소의 혼합판매 허용, 석유제품 거래시장 개설과 석유수입업 활성화 등이다. 과거 흐지부지된 정책을 재탕하거나 실효성이 낮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기름 값에서 시작된 물가 폭등에 시달리는 국민은 이런 대책을 보고 맥 빠지고 한심해 할 것이다.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 값이 묘하다'고 발언한 뒤 3개월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한다고 해서 기대를 걸었으나 약발 없는 내용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나마 SK에너지에 이어 어제 에쓰오일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ℓ당 100원씩 인하키로 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주무장관이 직접 "석유제품 가격의 원가 계산을 해 보겠다"고 했다가 "정유업체들이 성의 표시를 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은 결과다. 과연 이번 대책으로 기름 값이 얼마나 내려갈지, 유통구조는 개선될지 의문이다.
기업을 압박해 물가를 잡겠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됐다. 기름 값에 이어 생활물품 가격은 본격 상승기에 돌입했다. 지난달 설탕 값이 9% 오른 데 이어 이달 초 밀가루 값이 8.6% 인상되자 가공식품 가격이 모두 들먹거리고 있다. 업체들이 과자 가격을 8% 이상 올리기로 했고, 음료ㆍ빙과ㆍ라면 업체들도 늦어도 이달 안에 제품 가격을 잇따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두 서민들의 생활용품으로 장바구니 물가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몇 달 전 억지로 가격 인상을 눌렀으나 더 이상 업체들이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가는 초동 단계에서 잡지 못할 경우 가속력이 붙어 상승세가 지속되기 마련이다. 최근의 물가상승세를 놓고 국제 원자재 핑계만을 댈 수도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대적으로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진작 잡지 못한 정책실패 요인이 크다. 정부는 물가 불안에 정공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또 지금이라도 인플레 기대심리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수요 관리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원가 요인이 분명한 가격 인상을 인위적으로 누르거나 기업에 으름장을 놓는 식으로 물가관리를 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란하게 기대만 높여놓고 결과는 부실한 기름 값 TF가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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