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용카드시장, 퇴직연금시장, 주택담보대출시장, 자문형 랩(Wrap) 시장 등에서의 과당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9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많은 금융회사들이 유동성 및 건전성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던 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마저 든다.
물론 금융회사들이 금융 수요자에게 보다 값 싸고 질 좋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서비스 및 가격 경쟁이 원활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쟁의 정도가 지나치면 개별 금융회사의 건전성은 물론 전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우리는 지난 2002년 카드대란과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서 경험한 바 있다.
우선, 금융시장에서의 과당경쟁은 금융회사의 위험부담(risk-taking)을 확대시키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은 보다 공격적인 영업행태를 보이기 마련이다.
경쟁사가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일 때, 다른 금융회사들은 시장을 빼앗기고 있지만은 않으려 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리스크관리 및 손실흡수 능력을 넘어서는 과도한 위험부담을 하는 금융회사들이 나타날 개연성이 커지게 된다.
둘째, 과당경쟁은 금융시장의 쏠림현상(herd behaviour)을 야기해 개별 금융회사의 건전성은 물론 전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금융회사간 외형확대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금융회사는 성장세가 빠르고 수익성이 좋은 부문에 대한 영업을 경쟁적으로 확대하기 마련이다.
이 경우 금융시장내 특정부문이 적정수준 이상으로 과도하게 팽창함으로써 나중에 부실화될 위험이 그만큼 커진다. 이후 실제로 부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부실화 속도가 매우 빠르고 규모도 커 개별 금융회사의 건전성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과당경쟁은 금융회사의 단기 성과주의를 조장하고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초래할 수 있다. 영업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금융회사는 매월 또는 매분기의 영업실적이나 시장점유율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금융회사는 단기적인 성과를 극대화하는데 치중하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감안해야 할 제반 위험요인을 경시하기 쉽다.
리스크관리나 내부통제보다는 단기적인 영업목표 달성을 우선시하고, 성과지표(KPI)도 영업실적 위주로 운영할 소지도 크다. 단기성과에 얽매이다 보니 잠재위험이 커지는 등 좋지 않은 징후가 나타나도 감독당국이나 중앙은행에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할 것이라 생각하며 영업경쟁을 계속하는 도덕적 해이도 나타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과당경쟁은 단기적으로 금융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하면 금융회사는 금융소비자에게 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금융서비스 이용 확대를 유인하기 마련이다. 금융소비자가 자신의 소득이나 요구(Needs)에 맞게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면 문제가 없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7월 미국 씨티그룹의 Chuck Prince 회장은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한, 춤을 추어야 한다(As long as the music is playing, you've got to get up and dance. We're still dancing)."는 발언으로 화제가 됐는데 결국에는 서브프라임 사태를 계기로 씨티그룹은 미국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전철을 밟는 금융회사가 없기를 기대해 본다.
김장호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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